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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역사를 품은 생명의 땅,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을 가다

전병휴 기자
등록일 2026-05-14 14:01 게재일 2026-05-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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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왕자들의 태를 봉안한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전경. 울창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태실군이 조선 왕실 문화유산의 웅장함과 역사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전병휴기자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거북 모양의 석조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은 조선 제4대 국왕 세종대왕의 아들 18명과 손자인 단종의 태(胎)를 안치한 ‘세종대왕자 태실’이다. 600년의 세월을 넘어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는 이 역사적 현장을 찾았다.

선석산 아래 자리한 세종대왕자 태실은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아들 18명과 손자인 단종의 태(胎)를 안치한 곳이다. 조선 왕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과 태반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명당을 찾아 보관했는데, 이를 ‘장태(藏胎)’라 불렀다.

이 태실은 세종 20년(1438년)부터 24년(1442년) 사이 조성됐다. 왕자들의 태를 한곳에 모신 것은 왕실의 번영과 조선 왕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19기의 태실이 한 장소에 집단으로 조성된 사례는 국내에서 유일해 조선 초기 태실의 구조와 배치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태실을 둘러보다 보면 기단만 남아 있거나 비석 일부가 깨진 흔적도 쉽게 눈에 띈다. 이는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자신에게 반대했던 형제들의 태실을 훼손한 데서 비롯됐다. 실제로 금성대군과 안평대군 등의 태실은 당시 정치적 갈등 속에서 파괴되거나 형태가 크게 손상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 문화관광해설사는 “이곳의 비석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왕권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 다툼과 조선 초기 비극의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물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세조 자신의 태실은 즉위 이후 거대한 귀부(거북 모양 받침돌)와 가석을 추가해 화려하게 중수됐다. 형제들의 태실이 훼손된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당시 권력의 냉혹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늘날 세종대왕자 태실은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매년 태봉안 행차 재현 행사와 생명문화축제가 열려 관광객들에게 조선 왕실 문화와 생명 존중 정신을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천천히 태실을 걷다 보면 자식들의 안녕을 기원했던 세종대왕의 깊은 부성애가 전해진다. 비록 일부 비석은 깨지고 마모됐지만, 생명을 귀하게 여겼던 조선 왕실의 정신만큼은 여전히 선석산 자락에 남아 묵직한 울림을 준다.

한편 세종대왕자 태실은 입장료와 주차료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주변에는 선석사성밖숲, 한개마을 등 관광지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 주말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병휴기자 kr583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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