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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의 경제

등록일 2026-02-01 15:18 게재일 2026-02-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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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시조시인

몇 년 전부터 발 앞부분에 통증이 가끔 왔다. 앞부리가 조금 뾰족한 신발을 신으면 증상이 더 심해졌다. 걷다가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에 한참을 멈춰 선 적도 있었다. 앞코가 좁은 신발은 하나씩 신기 편한 것으로 대체되어 신발장 안은 대부분 운동화가 차지하고 있다.

원피스를 입고 나갈 생각이어서 구두를 신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색의 스팽클이 촘촘히 박힌 흰색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모양이 예뻐서 버리지 못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 옆 한구석에 몸통을 덩굴로 묶어 놓은 운동화가 놓여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조금은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인들과 가까운 산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자주 신지는 않았지만 버리기 아까워 가지고 있던 운동화가 있었다. 그것을 신고 가기로 했다. 출발은 산뜻했다. 산길을 즐겁게 대화하며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발밑의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가벼워진 듯 했다. 모처럼 산에 온 기분 탓이겠거니 하며 걸었다. 뒤에서 오던 분이 신발 밑창 좀 보세요 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아뿔사. 운동화의 밑창이 양쪽 다 벌어진 것이었다.

부끄러움은 다음 일이고 당장의 조치가 필요했다. 주변에 인가가 없는 산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한 분이 근처에서 덩굴을 주워 왔다. 단단해서 묶으면 괜찮을 것이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운동화를 묶었다. 생각보다 편했고 매듭도 풀리지 않아서 하루 종일 그것을 신고 다녔다. 때때로 우리 사이의 화제가 사라졌을 때 그 이야기로 웃을 수 있었다. 그 운동화를 버리지 않고 신발장에 둔 것이다.

눈길을 보내면서도 흰색 구두를 집어 들었다. 그 날 행사에 참석한 내내 수시로 통증이 나타나서 집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구두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걷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경제학에 매몰 비용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이미 지출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 매몰 비용이다. 이것은 어떤 선택을 해도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들어간 돈이나 쓴 시간이 아까워 손해인 줄 알면서도 비합리적으로 계속 붙들고 있는 판단 실수를 매몰 비용의 오류라고 한다.

중도에 단념하지 못한 경험이 제법 있다. 끝까지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이런 오류는 일상의 가벼운 문제에서도 나타나지만 크게는 기업이나 국책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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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로 묶은 운동화.

인간에게는 손실을 피하고 싶은 성향과 함께 자기 합리화나 책임 회피와 같은 마음들이 있다고 한다. 미래의 수익과 비용을 생각해서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함에도 손실로 인한 고통을 더 크게 느껴 그런 오류를 범한다고 한다.

몸통이 덩굴로 묶인 운동화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깝다거나 버리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것을 보면서 보냈던 시간이나 좋은 기억 때문에 필요 없고 사용할 일이 적은 것들을 붙들고 있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순간 잊어버리고 옷에 어울리는 구두에 혹한 것이었다. 구두를 신고 나가면 발에 통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었다. 늘 후회는 일을 당하고 나서야 나타나는 후발 주자이다.

매몰 비용 때문에 현재나 미래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포기를 하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추억이라는 것, 함께 한 시간이라는 것은 실물로 붙들고 지키려고 할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를 지키는 게 아니라 현재를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더구나 잊지 않기 위해 버려야 할 신발 하나를 신발장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지른 같은 실수. 작은 것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때로는 버려야 하는 것에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신발장을 열었다. 아직도 아까워 버리지 못한 신발들이 눈에 띄었다. 한 번도 제대로 신지 못한 샛노란 구두 한 켤레가 나를 빤히 보는 듯 하다. 큰 종이봉투를 가져와 신지 않을 신발들을 담았다. 신발을 담는 손길이 부쩍 바빠진다.

/전영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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