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는 없는 눈이라 더 신기해요. 아이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한국에 온 뒤로 처음 봅니다”
29일 오전 경주월드 눈썰매장. 하얀 설원 위로 썰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영하권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뺨을 때렸지만,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이들의 입에선 비명 섞인 환호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차례 슬로프를 내려온 아이들은 썰매를 끌고 다시 정상을 향해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따르는 부모들의 얼굴에도 모처럼의 여유와 미소가 번졌다.
경북매일신문이 주최·주관하고 경주시와 경주월드가 후원한 ‘2026 경북 가족사랑 눈썰매 축제’ 현장이다.
이날 행사에는 포항, 경주, 영덕 등 경북 동해안권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다문화 가족과 지역 내 취약계층 8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의 겨울을 만끽했다. 낯선 이국 땅에서 고단한 생업과 일상에 치여 겨울의 정취를 잊고 살았던 이들에게 하얀 설원은 국경과 세대를 넘는 소통의 장이 됐다.
축제의 막을 올린 최윤채 경북매일 사장은 환영사에서 “가정의 행복은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뿌리이자 큰 힘”이라며 “오늘만큼은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원기 경주월드 대표는 “우리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넓은 설원에서 마음껏 즐기며 꿈과 도전,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운영 요원들의 안내와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켜 퇴장할 때까지 사고 없이 즐겁게 놀다 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인숙 경주시 인구정책과장 또한 “신나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귀가하는 것”이라며 “가족들과 함께 오늘 하루 예쁜 추억을 가득 담아 가시길 응원한다”고 격려했다.
현장에서 만난 가족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감동이 교차했다. 아이의 사진을 찍느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박진수 씨(59)는 “평소 생업에 종사하느라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늘 미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다”며 “오늘 이렇게 눈밭에서 함께 뒹굴며 웃다 보니 마음속 미안함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라며 밝게 웃었다.
친구들과 썰매 경주를 벌이던 조유희 양(13)은 “교실에서 공부할 때보다 훨씬 박진감 넘친다”며 “찬 바람을 가르며 내려올 때의 짜릿함이 최고라 친구들과 누가 더 빨리 내려오는지 내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즐거워했다.
눈마을 ‘플리트비체’에서는 작은 눈 조각 대회가 열려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이 발갛게 얼어가는 줄도 모르고 눈을 뭉쳐 눈사람과 눈오리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베트남에서 온 옥빛나 씨(43)는 “처음 만져본 눈이 너무 차가워 깜짝 놀랐지만, 아이와 나란히 앉아 눈사람을 빚다 보니 추위도 잊을 만큼 행복하다”며 “한국에서 만든 추억 중 오늘이 가장 특별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경진 군(9) 역시 “컴퓨터 게임보다 훨씬 재미있다”며 “하얀 눈 가루를 맞으며 내려올 때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아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고 소리쳤다.
한편, 이번 축제는 지역 내 다문화 가정과 취약계층 가족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제공하고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됐다. 단순히 즐기는 행사를 넘어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화합의 장으로 기획돼 그 의미를 더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