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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이슈 = 싶은 것만 본 행정, 학산천 산책로에 남은 불편한 흔적

임창희 기자
등록일 2026-01-22 16:26 게재일 2026-01-2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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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천생태하천 복원공사 산책로 전경. /임창희 기자


우리는 종종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괴테도 “우리는 자신이 찾는 것만 보고, 자신이 아는 것만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행정도, 시민도 이 문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대규모 도시개발과 환경사업 앞에서 이 문장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학산천 생태하천복원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하나의 사업 실패나 설계 미흡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행정이 무엇을 보려 했고, 무엇을 보지 않으려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며, 동시에 시민들이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고 목소리를 냈는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학산천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성과와 오류 등을 놓고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최근 들어선 하천을 횡단하는 교량 하부 산책로와 관련,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교량 높이가 지나치게 낮아 보행자들이 5~6m 구간을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가야 하는 구조로 시공돼 있어서다. 정상적인 산책로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장에는 ‘머리조심’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보행자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돌린 셈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위에 덧붙여진 “머리를 숙이면 부딪히는 일이 없습니다”라는 교훈적 글귀다. 설계와 시공의 부실로 만들어진 불편을 시민의 자세와 태도 문제로 치환하게 해 놨다. 이 아래를 지나면 안전을 안내받기보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라는 불쾌감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같은 장면은 학산천 복원사업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먼저 고민했다면 나올 수 없는 설계이고, 사후 보완 역시 구조 개선이 아니라 안내문 부착에 그쳤다. 생태복원을 내세웠지만, 정작 사람의 동선과 일상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에 빚어지고 있는 일이다.

행정은 종종 ‘우리는 전문가의 판단에 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판단이 언제나 정답이었는지는 사후 검증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문제는 검증의 장이 충분히 열리지 않는 데 있다. 공청회는 형식에 그치고, 시민 의견은 참고자료로만 남기 일쑤다. 그렇게 결정된 정책은 행정의 치적으로 포장되고 홍보된다. 반면 실패의 책임은 흐릿해지고 이런저런 변명으로만 남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늘 행정의 성공 사례만을 보게 된다. 시민사회 역시 바쁜 일상 속에서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엔 한계가 있기에 시간만 지나면 숙진다. 서로가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그 문화는 일상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논란이 인 비슷한 사업들이 또 다시 반복되는 원천이다. 포항시가 올해 추진하기로 한 양학천 생태복원사업도 그중 하나다.

괴테의 말은 여기서 다시 의미를 갖는다. 행정이 자신이 원하는 성과만 보고 있다면, 시민은 더 넓은 시야로 질문해야 한다. 왜 이 방식이어야 하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유지관리 비용과 재난 위험은 충분히 검토됐는지 묻는 역할은 결국 시민의 몫이다.

도시는 행정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있을 때 정책은 비로소 현실을 닮아간다. 생태하천이 진정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공사 이전보다 공사 이후의 관리, 그리고 행정 이후의 시민 감시가 더 중요하다. 박수보다 질문이 많아질수록, 도시는 건강해진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찬성도, 감정적인 반대도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괴테의 문장을 다시 곱씹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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