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에서 1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민재 씨(가명·54)는 최근 가게 문틈에 끼워진 대출 명함을 버리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치솟는 물가에 매출은 반토막 났고 당장 돌아오는 임대료와 가스비를 막을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명함에는 ‘무담보·무보증·당일 즉시 대출’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김 씨는 “은행 문턱은 높고 당장 몇 백만 원이 급한 상황에서 발밑에 널린 명함이 마치 마지막 동아줄처럼 보였다”고 털어놨다.
도심 곳곳에 뿌려지는 ‘대출 명함’이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약탈적 금융 범죄의 통로가 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저신용 상인들이 오토바이에서 살포되는 이 ‘종이 조각’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명함에 적힌 번호로 문의하면 대부분 비대면 상담을 유도한다. ‘일수’ 혹은 ‘주수’라 불리는 이 불법 사금융은 연이율로 환산할 경우 400~500%가 넘는 살인적인 금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이자를 떼고 원금을 빌려준 뒤 단 하루라도 입금이 늦어지면 지인 연락처를 이용해 협박을 일삼는 전형적인 ‘불법 추심’으로 이어진다.
포항시 북구의 한 상인회 관계자는 “오후만 되면 바닥에 대출 명함이 깔리지만 정작 뿌리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며 “막다른 길에 내몰린 상인들이 한 번 발을 들였다가 가게를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실제 자영업자들의 경제 지표는 ‘비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2·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중 저소득·저신용 다중채무자인 ‘취약차주’는 43만 7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자영업 취약차주의 비중은 전체 자영업 차주 수의 14.2%를 차지하며 이들이 보유한 대출 규모는 전체의 12.2%에 달한다.
상환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연체율도 치솟고 있다. 자영업 취약차주의 대출 연체율은 11.34%로 2022년 하반기 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 번 연체에 빠지면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연체지속률은 74.9%에 달해 연체의 장기화가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민생 경제 전체를 갉아먹는 ‘구조적 붕괴’의 신호로 본다.
박추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자영업자가 체감하는 고통은 현 경제의 위기를 가장 먼저 알리는 바로미터”라며 “이를 단순히 자영업자만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 되며 경제 전반에 퍼진 광범위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장기 불황 속에서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이 불법 사금융이라는 ‘악의 순환’에 빠지는 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닌 구조적 비극”이라며 “법적 제약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금융당국과 은행이 협업해 취약 차주를 제도권으로 유도하고 정부가 그 리스크를 떠안는 다면적인 정책 처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