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기적, 봉화 분천역에 내린 산타의 선물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지도 위에서조차 희미해져 가던 이 작은 마을의 분천역은 한때 백두대간의 거친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물류의 거점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산간 지역에서 채벌된 풍부한 목재들이 이곳을 거쳐 전국으로 실려 나갔고, 역 광장은 나무 향기와 사람들의 북적임으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무심했다.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화석 연료의 시대가 저물면서 목재 운송은 급감했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간 자리엔 적막만이 남았다.
하루 이용객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전락한 분천역은 폐역의 위기를 앞둔 전형적인 소멸 지역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2014년, 이 쓸쓸한 간이역에 ‘산타클로스’라는 이색적인 스토리텔링이 입혀지면서 믿기 힘든 대반전이 시작되었다. 차가운 철길 위로 동화적 상상력이 내려앉자, 분천역은 더 이상 ‘버려진 역’이 아닌 ‘찾아오는 역’으로 그 운명이 뒤바뀌었다.
분천 산타마을의 성공 비결은 소외된 환경을 오히려 강력한 무기로 승화시킨 역발상에 있다. 사실 분천은 경북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힌다. 인근 도시인 영주에서도 기차로 꼬박 한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첩첩산중이다. 현대의 속도전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분천은 이를 ‘아날로그 감성 여행’의 정체성으로 치환했다.
도시의 소음과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설경과 느릿느릿 흐르는 바깥 풍경은 그 자체로 치유의 과정이 되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조금씩 현실에서 멀어져 마침내 도착한 분천역. 방문객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기차역이 아니라,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진입하는 마법 같은 게이트웨이가 된 것이다.
마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는 이국적이고 따스한 온기로 가득 찬다. 플랫폼에서부터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루돌프, 그리고 인자한 미소의 산타클로스 조형물들이다.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 풍성한 콘텐츠도 매력적이다. ‘산타 우체국’에서는 사랑하는 이에게 훗날 배달될 ‘느린 편지’를 쓰며 잊고 지낸 감정을 되새긴다.
마을 언덕을 활용한 눈썰매장과 꽁꽁 얼어붙은 논바닥 위에서 즐기는 전통 얼음썰매는 아이들에게는 신선한 환상을, 어른들에게는 잊힌 유년의 기억을 소환한다.
특히 백두대간 협곡열차인 V-트레인의 객차를 산타 테마로 꾸며 운영하는 시도는 이동 시간마저 하나의 거대한 축제로 승화시키며 ‘여행의 완성’을 보여준다.
분천 산타마을이 여타의 인위적인 테마파크와 궤를 달리하며 감동을 주는 지점은 바로 ‘사람’이다. 이곳은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차가운 위락 시설이 아니다. 마을의 주인인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에서 투박하지만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봉화의 넉넉한 인심을 만나는 과정은 방문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러한 주민 참여형 모델은 소멸 위기 지자체의 로컬 브랜딩에 있어 중요한 표준을 제시한다. 관광객의 증가가 단순히 수치상의 성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특산물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변화를 통해 자부심을 되찾았고, 이는 다시 관광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서비스로 돌아가며 ‘지속 가능한 상생’의 꽃을 피우고 있다.
봉화군은 이제 겨울 한 철의 성공을 넘어, 분천 산타마을을 사계절 내내 생명력이 넘치는 체류형 관광지로 확장하려는 담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겨울의 시린 눈꽃 대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여름에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역설적인 테마로 축제를 개최한다. 또한 인근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연계한 숲길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여,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연중 무휴의 힐링 성지를 꿈꾸고 있다.
백두대간의 거친 숨결과 산타클로스의 다정한 미소가 공존하는 곳, 분천 산타마을. 이곳은 우리에게 단순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렸던 아날로그적 낭만과 지역 공동체가 지닌 희망의 힘을 동시에 증명하고 있다.
올겨울, 흰 눈이 덮인 산맥을 헤치고 달려가는 산타 열차에 몸을 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길의 끝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겨울의 기적’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