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직후엔 낮 길이 하루 20~30초 증가 춘분 무렵엔 하루 130~150초까지 늘어나 동지-하지 하루 평균 100초 안팎씩 낮 늘려가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어둠의 정점은 꺾이고, 빛의 시간은 다시 세력을 넓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우리의 조급한 기대만큼 드라마틱하지 않다. 동지를 지났음에도 한동안 “여전히 해가 짧다”고 느끼는 이유는, 천문학적 원리와 자연이 지닌 정교한 완급 조절 속에 숨어 있다.
동지 직후 낮의 길이는 하루에 고작 5~10초 늘어나는 데 그친다. 며칠이 지나도 증가폭은 20~30초 안팎이다. 변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체감하기엔 턱없이 미미(微微)하다.
이는 동지가 태양의 남중 고도가 1년 중 가장 낮아지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위로 던진 공이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잠시 멈춘 듯 보이다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듯, 태양 역시 이 시기에는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 있다.
천구상에서의 높낮이, 즉 적위 변화가 매우 완만해 낮의 길이도 더디게 늘어난다. 변곡점에서는 언제나 가속이 붙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완만하던 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속도를 낸다. 낮의 길이가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시기는 3월 21일 전후의 춘분(春分) 무렵이다. 이때는 하루에 약 130~150초, 즉 2분 10초에서 2분 30초씩 낮이 길어진다.
일주일만 지나도 낮 시간이 15분 이상 차이 난다. 이쯤 되면 누구나 “확실히 해가 길어졌다”고 느낀다. 우리가 대개 2월 중순 이후부터 봄의 기운을 체감하는 것도 기분 탓만은 아니다. 실제로 빛의 영토가 가장 빠른 속도로 확장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낮과 밤의 길이를 결정하는 근본 동력은 지구의 자전축이다. 지구는 약 23.5도 기울어진 상태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 기울기 때문에 태양의 남중 고도가 달라지고, 그 결과 계절과 함께 낮과 밤의 길이도 변한다.
동지 무렵 낮의 길이는 약 9시간 40분, 하지 무렵에는 약 14시간 50분에 이른다. 두 시점의 차이는 약 5시간이다. 이 5시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지구는 동지부터 하지까지 약 182일 동안 하루 평균 100초 안팎씩 낮을 늘려간다. 하지에 가까워질수록 변화는 다시 완만해지고, 또 하나의 전환점을 향해 나아간다.
어둠이 가장 깊었던 날 이후, 빛은 그렇게 돌아온다. 처음에는 하루 수십 초라는 미세한 걸음이지만, 그 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소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한 번도 어김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자연의 시간은 우리에게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임을 일깨운다. 비록 지금 당장은 해가 짧아 보일지라도, 지구가 자전축을 기울인 채 태양을 도는 한 봄은 이미 우리 곁으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속도를 붙여 다가오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