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멕시코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리다 칼로 미술관이 있습니다. 일자눈썹의 강렬한 눈빛을 가진 프리다 칼로는 고통의 세월을 이겨 낸 여성입니다. 단지 인생을 살다 보니 힘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운명을 예술에 대한 의지로 극복해 낸 초인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부모가 이 병원 저 병원 데리고 다니며 고치려고 했지만 끝내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습니다. 다리를 질질끌고 다니는 그녀를 아이들은 ‘나무다리’라며 놀렸습니다.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던 언니도 가출해 버렸습니다.
그녀가 18세가 되던 해에 그녀의 삶을 난도질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의 옆구리를 받았는데 이 사고로 척추 세 군데와 갈비뼈가 부러졌고 대퇴골 경부가 끊어졌습니다. 두 다리는 완전히 으스러졌습니다. 왼쪽 다리는 열한 군데가 골절됐고 오른쪽은탈구되었습니다.
왼쪽 어깨가 빠지고 골반이 세 동강났습니다. 버스를 지지하고 있던 철제 막대기는 그녀의 왼쪽 어깨를 찌르고 배를 관통해 자궁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그녀가 엄청난 사고에도 살아났다는 것이 기적이
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삶의 작은 끈조차 내려놓았을 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침대에서 누워 사는 동안 운명처럼 그녀에게 그림이 찾아왔습니다. 오른손을 제외한 신체의 그 어느 곳도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녀는 붓을들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어요. 게다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그림이 그 이유에요”
어머니는 그녀를 위해 닫집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문을 닫고 그녀가 누워서 하늘이 보이는 곳에 거울을 달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자화상을 그렸고 자신의 고통을 화폭에 풀어놓으면서 삶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강렬한 그녀의 그림은 조금씩 화단에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그림만 강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삶 또한 강렬했습니다.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자 공산당원이 되었고 당시 유명했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의 유산과 남편의 폭력과 외도 때문에 우울증을 앓을 정도였습니다. 나쁜 남자였던 디에고는 프라다 칼로의 막내 동생과 불륜을 벌였고 이로 인해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카소나 칸딘스키 같은 세계적인 거장이 격찬하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지만 그녀의 삶은 늘고통뿐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은 핏빛 과즙이넘쳐 나는 수박입니다. 수박에는 비바 라 비다(vivalavida, 인생이여 영원하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일본 중부 다카마쓰에 붙어 있는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입니다. 이 섬은 쓰레기 섬으로 전락하던 중 마을 사람들과 건축가,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예술의 섬으로 재건한 곳입니다. 일본의 천재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지상이 아닌 지하에 미술관을 만든 지중 미술관이 있습니다. 마을의 빈집들마다 설치 미술 작품들이 있어서 찾아가며 즐기는 맛이 대단합니다.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작품은 단연코 쿠사마 야오이의 호박입니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호박은 강렬하면서도 이색적입니다. 쿠사마 야오이의 작품은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습니다. 쿠사마 야오이도 프리다 칼로 만큼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여인입니다.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해 정신 병원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척이나 벅찼다고 고백하던 그녀를 구원한 것은 예술의 세계였습니다. 남들이 생각조차 못하는 그녀만의 감성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프리다 칼로와 쿠사마 야오이는 평생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들이겠지만 의외로 두 사람이 일치하는 부분이있습니다. 빨간색 호박과 빨간색 수박. 프리다 칼로는 말했습니다. 수박 과즙처럼 우리의 삶은 피투성이 인생이지만 수박을 먹으면 과즙이 달콤한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다고.
삶의 위로가 필요하다면 두 사람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 사람들처럼 치열하게 투쟁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고통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찾으려 했던 절박한 마음을 이해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은 엄청날 수도 있지만 대단하지 않을 수도있습니다. 엄청난 고통일 수도 있지만 달콤한 과즙이 숨어 있기에 살 만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문득 그녀들의 작품이 보고 싶습니다. 파란 문이 인상적이던 프리다 칼로 미술관도 다시 떠오릅니다. 쿠시마 야오이의 작품에 왜 눈물이 묻어 있는지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인생은 영원하니까요.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