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기자의 세계여행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이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튀르키예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은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차를 타고 가다 흔히 만나는 고대 도시는 물론 해협과 강, 마치 모자를 쓴 것처럼 눈 덮인 산 아래 마을에도 숱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것은 때로 역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문명이 충돌했던 흔적이기도 하다.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에서 숱하게 만나는 고대 도시에서는 로마 시대의 흔적을 발견한다.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는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와 동로마인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나뉘고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동로마는 1000년 동안이나 번영을 누렸다. 그래서 역사가들이 “튀르키예를 만나면 세상의 절반이 보인다”고 말했나 보다.
튀르키예의 남서부를 여행하면서 5개의 고대 도시와 2개의 바다(지중해, 에게해), 바다처럼 큰 강과 여러 개의 산을 만났다. 마주치는 풍경은 황홀했고 사람들의 눈빛은 따뜻했다. 가보지 못한 이들은 궁금해서 가고 싶어지고, 한 번 가면 또 가고 싶은 곳. 터키는 바로 그런 곳이다.
남서부여행은 휴양도시 안탈리아서 시작
기둥 5개만 남은 아폴론신전 全 유적 압도
최대 2만명 수용하는 원형극장 무대 위서
극장 끝까지 들리는 ‘소리의 마법’ 놀라워
로마 황제들이 ‘망중한’ 즐겼던 온천지대
석회층 웅덩이는 ‘계단식 다랑이논’ 닮아
△ 그리스 유적과 로마 유적이 혼재되어 있는 시데
튀르키예 남서부 여행은 일반적으로 튀르키예 최고의 휴양도시인 안탈리아에서 시작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100만명이나 방문하는 안탈리아에는 고대국가 팜필리아의 수도였던 시데가 있다. B.C. 300년경에 번성한 시데에는 지금도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역사의 풍랑 속에 부침을 거듭한 시데는 건국 초기에는 그리스의 일부였다가 이집트의 영토로 편입됐다. B.C. 67년경에는 로마의 다스림을 받았다. 시데의 유적들이 그리스 유적 같기도 하고, 로마 유적 같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시데에는 2300년 전 도시의 흔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도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공중목욕탕 격인 하맘과 원형극장,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등도 이채롭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유적은 아폴론 신전이다. 고대 유적들이 무너져 내린 잔해 사이로 기둥 5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시데의 모든 유적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짙푸른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얗게 빛나는 기둥들은 저녁 무렵이면 황홀한 색깔로 채색된다.
△ 원형극장이 완벽하게 보존된 아르펜도스
팜필리아의 또 다른 도시인 아르펜도스에는 원형극장이 완벽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명상록’의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위해 만든 이 극장은 최대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무대에서 작게 소곤거려도 극장 끝에 있는 관객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향 효과가 뛰어나다.
무대에는 5개의 문이 있는데 그 아래로 작은 문들이 줄지어 있다. 검투사와 맹수들이 싸우는 날에는 이 문을 통해 맹수가 드나들었다. 오직 방패와 검에 의존해 생사를 걸고 맹수와 싸우는 검투사들은 문을 통과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대 도시는 육지에만 있지 않다. 토로스 산맥 지중해 변에 자리잡은 항구도시 케코바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찬란한 비잔틴 문명을 자랑했던 케코바는 대지진으로 물에 잠겨버렸다. 케코바의 별명이 ‘가라앉은 도시’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케코바에서 유람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수중 고대 도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투명한 물 아래로 고대 도시의 영화가 일렁인다. 성벽이며 돌담, 계단 등이 수면에 흐릿하게 번진다. 바닷속 깊이 잠긴 마을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이채로운 고대 도시는 안탈리아에서 북쪽으로 120㎞ 정도 떨어진 부르두르에 있는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다. 고대국가 피시디아의 수도였던 이곳은 해발 1700m의 아크다으 산 바로 아래에 있다. 1706년 프랑스인 탐험가 파울 루카스가 처음 발견한 사갈라소스에는 두 개의 아고라와 하맘, 시장터, 도서관, 제우스 신전 등이 흩어져 있다.
도시의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고대인들이 시장터나 원형극장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다. 번성했을 당시 도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요정의 도시’ ‘열정의 도시’ 등으로 불렸고 주변국 황제들이 탐을 냈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원형극장은 A.D. 518년에 지진으로 무대 부분이 완전히 내려앉았지만, 관중석은 비교적 멀쩡한 상태로 남아 있다.
△ 세계자연유산 석회층 온천지대 파묵칼레
또 한 곳의 고대 도시는 석회층 온천지대인 파묵칼레 위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터키를 홍보하는 책자에 빠짐없이 나오는 파묵칼레는 마치 계단식 다랑이논처럼 생겼다. 소금의 벽을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같은 하얀 석회층이 절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고 그 아래로 석회를 머금은 웅덩이들이 청아하게 빛난다. 이 석회층은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한다. 아침에 푸르던 물빛이 햇살이 따가워지는 낮에는 흰색이 되고,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면 붉은 색으로 변한다.
파묵칼레는 로마 황제들이 망중한을 즐겼던 곳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방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석회층 언덕에는 ‘히에라폴리스’라 불리는 고대 로마 유적지가 있다.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조의 터전이었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히에라폴리스’는 한때 인구 8만명에 이르는 대도시였다.
튀르키예 남서부 여행지에서 장미향 가득한 도시 으스파르타를 빼놓을 수 없다. 1880년대만 해도 튀르키예에는 장미가 없었다고 한다. 장미를 보급한 사람은 ‘터키의 문익점’ 격인 이스마일 에펜디였다. 당시 장미 원예의 선진국이었던 불가리아는 장미 품종 중 최상급으로 치는 다마스크 로즈의 씨앗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이스마일 에펜디는 불가리아 여행 도중 장미의 계곡에 화사하게 핀 다마스크 로즈를 터키에 들여오고 싶어서 지팡이 속에 씨앗을 몰래 숨겨 가져왔다 한다.
이 ‘튀르키예의 문익점’ 덕분에 으스파르타는 세계 1위 장미오일 생산지가 됐다. 전 세계 장미오일 공급량의 65%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장미오일을 얻으려면 엄청난 양의 장미가 필요하다. 장미 100만송이의 무게가 약 4인데 이를 가공하면 겨우 1㎏ 정도의 장미오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고급 향수, 화장품 등의 필수 원료로 쓰이는 장미오일은 향이 무려 10시간 이상 지속될 정도로 강렬하다.
으스파르타의 또 다른 명물은 튀르키예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인 에이르디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호수는 바다처럼 광활하다. 여의도 면적의 무려 61배나 되는 517㎢의 호수는 식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하다. 진한 코발트 빛의 이 거대한 호수는 계곡물이 모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지하에서 솟아났다고 하니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짙푸른 호수 물빛과 가늘고 긴 반도처럼 보이는 작은 섬 등 경관이 아름다워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글, 사진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여행 정보
- 세계 4대 음식, 튀르키의 케밥
튀르키예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음식이다. 작게 썬 고기 조각을 구워 먹는 전통 요리인 케밥은 주로 양고기로 만들지만, 소고기나 닭고기로 만들기도 한다. 채소를 더해 조리하기도 한다. 케밥의 종류는 수 십 가지가 넘는데 그중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굽는 시시 케밥과 도네르 케밥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고기가 메인인 케밥을 먹을 때는 주로 필라프(튀르키예식 볶음밥)를 곁들이며 샌드위치를 만들 듯 피데(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만들어 화덕에 구운 터키 빵)에 싸먹기도 한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비행기로 12시간이 걸린다. 튀르키예 남서부로 여행하려면 이스탄불에 내려 안탈리아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튀르키예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전압은 220V로 별도의 변압기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화폐는 튀르키예리라(TL)이며, 1TL은 약 33.99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