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시장은 우리네 삶의 애환을 만나는 곳이다. 북적이는 장터 한가운데 서 있으면, 묘하게도 숨이 트인다. 삶의 무게에 허리가 휘던 사람도, 장날만 되면 조금은 꼿꼿하게 서서 걸음을 재촉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흥정하는 목소리, 어쩌다 들리는 투덜거림까지도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료(史料)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서기 490년 신라 소지왕 12년에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 최초의 장, 즉 경사 시(京師市)가 열렸다고 한다. 그때도 오늘날처럼 물건을 사기보다 소식을 듣고, 웃음을 나누고,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더 컸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경시(京市)와 향시(鄕市)로 나뉘어 장터가 전국적으로 뿌리내렸고, 지금은 오일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오일장은 시골의 시간표 같은 존재다. 달력보다 정확하게 다가오는 장날, 그날만 되면 평소 조용하던 마을길에 먼지가 풀풀 일고, 짐수레와 경운기, 심지어 트럭까지 줄지어 들어온다.
장날만 되면 평소 보이지 않던 사람도 나타난다. “아, 이 양반 살아 있었구먼!” 하고 서로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장터의 재미다.
농경사회에서 장마당은 생존과 직결된 시장이었다. 호미나 낫을 벼루는 대장간, 농사일의 반려자인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대장간과 우시장이 있는 장은 ‘큰 장’으로 불렸고, 없는 장은 ‘아기 장’쯤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장날에 빠질 수 없는 건 단연 먹거리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배고픈 사람은 흥정을 오래 못 한다. 그래서 장터 한편에는 늘 국밥집이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밤새도록 끓인 사골국물 위에 벌겋게 뜬 기름, 큼지막하게 썰린 대파, 툭툭 들어간 고깃덩이···. 그 냄새는 멀리서도 코를 잡아끌었다.
장날은 힘든 농사일 속에서 민초들이 누리는 축제의 날이었다. ‘볼일 없는 장에 거름 지고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사실 장날은 볼일이 없어도 가는 날이었다. 옆집 소식도 듣고, 새로 들어온 장사꾼 구경도 하고,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장터에는 흥을 돋우는 소리들이 넘쳤다. 엿장수의 가위질 ‘챙챙’ 소리, 뻥튀기 장수의 “뻥이요~” 외침, 약장수의 구수한 입담···. 심지어 파는 물건은 제각각이지만 손님을 붙잡는 목소리만큼은 다들 대동소이했다. 장날은 시끄럽지만, 그 시끄러움 속에 삶의 온기가 있다.
가격 흥정은 장터만의 또 다른 묘미다. ‘장금(場金)’이라 부르는 그날그날의 시세는 농산물의 수확량, 바다 날씨, 심지어 장꾼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고, 아지매, 그 값이면 내가 쪽박 찹니다” 하다가도, 손님이 그냥 가려 하면 “가져가소, 가져가” 하며 덥석 안겨준다. 이게 바로 장터 인심이다.
예전에는 산 하나 넘거나 개울 하나 건너 사는 사람들끼리 연분이 닿아 사돈지간이 되면, 장날은 거의 가족 모임이 됐다. 사돈끼리 장터에서 마주치면, “요기나 하고 갑시다”하며 국밥집으로 향했다. 국밥 한 그릇에 담긴 건 고기만이 아니라 정과 추억이었다.
장마당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삶을 사고팔고 웃음을 흥정하는 곳이다. 국밥 한 그릇 값으로 하루가 즐거워지는 그런 장터야말로 민초들의 진짜 축제다.
/방종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