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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제 역할을 찾을 때

등록일 2025-10-09 16:00 게재일 2025-10-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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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라 변호사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보장적 기능과 보호적 기능이다. 보장적 기능은 법이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지만 그에 저촉하지만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것이다. 보호적 기능은 법이 개인의 권리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법이 보장적 기능도, 보호적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영역이 있었다. 문신시술을 의료행위로 보아 의료인 아닌 자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필자가 만난 의뢰인 중에 포항 남구에서 미용샵을 운영하던 싱글맘이 있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술은 눈썹 문신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중엔 의사도 있었다. 어느 날 시술을 받고 간 손님 한 명이 부작용이 생겼다며 환불과 치료비를 요구했다. 들어보니 시술 후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염증이 발생한 것이었다. 요구하는 치료비 액수도 터무니 없었다. 환불과 치료비 지급을 거절하자 이 손님은 샵 원장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결국 이 원장에겐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전과자가 됐으니 다음에 또 이런 손님이 나타나 고발을 하면 이젠 징역형으로 처벌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의사들도 눈썹 문신을 받으러 오던 이 미용샵의 사장은 의사가 아닌데 눈썹 문신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범죄자가 되었다. 1992년에 대법원이 문신을 의료행위라고 판단한 이후 30년 넘게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발생해 왔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타투를 받은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 명성의 타투이스트 김도윤씨도 전과자가 된 지 오래다. 다른 잘못은 한 것이 없다. 그러나 타투 시술이 범죄로 취급되는 유일한 나라인 대한민국에선 누군가 신고하면 세계적 타투이스트라도 전과자가 되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현실에선 완전히 보편화 된 문신시술을 법과 법원은 의료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처벌하기만 하니 문신 시술업은 위축되었다. 이 업을 하며 생계를 꾸릴 수는 있었지만 신고하겠다는 고객들이 무서워 돈을 뜯기고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겼다.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시술 과정에서 성범죄를 당해도 신고가 두려워 고소를 할 수가 없었다. 타인에 대한 법익침해가 없는데도 법은 문신 시술업자들의 활동을 보장하기는커녕 억압하고 위축시켰다. 법이 보장적 기능을 손 놓은 것이었다. 소비자들에게도 피해가 있었다. 문신을 그저 범죄행위로만 보니 시술 과정에서의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를 마련할 리 없었다. 무조건적인 불법화는 음성화를 부추길 뿐이었고 결국 법은 문신을 받는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보호적 기능도 하지 못했다.

보장적 기능도 보호적 기능도 하지 못하던 법의 역할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게 됐다. 지난 9월 25일 비의료인의 문신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문신사법은 앞으로 2년 후 본격 시행된다. 그러면 이제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고, 국가시험에 합격해 면허를 취득한 문신사라면 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시술 과정에서의 위생 및 안전관리 지침과 의무사항도 마련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신 시술을 하는 사람들도, 받는 사람들도 법에 의해 보장과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김세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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