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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가스라이팅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

등록일 2025-09-25 16:01 게재일 2025-09-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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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라 변호사

경기도 가평 신천지 평화의 궁전 앞엔 매주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71세의 김태순씨가 있다. 지인 소개로 1989년 신천지에 들어간 김씨는 30년간 노역에 시달리다 2020년 신천지를 탈퇴했다. 사역이라는 명분 하에 전도, 밥 짓기, 전단지 붙이기 등 온갖 일을 했지만 30년 믿음 생활의 결과는 헌금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남은 수천만 원의 빚과 풍비박산 난 가정이었다. 그는 신천지의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에 세뇌당해 벌어진 일이라며 신천지 교단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30년 세월이 원통해요. 지금도 젊음 사람들이 세뇌당해 인생을 낭비당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김씨를 보면 늦게라도 세뇌에서 벗어나게 된 그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탈을 쓴 악덕 교주의 세뇌에 빠져 가정과 재산을 잃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니 말이다.

민간인 폭도들이 법원을 부수고 침탈한 전대미문의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건도 종교적 가스라이팅과 연관되어 있다. 전광훈 목사는 폭동 사태가 일어나기 하루 전 집회에서 마이크에 대고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초헌법적 권리인 국민저항권을 통해 국가기관이나 그 기능에 대해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것도 정당하다”, “서부지방법원 주소를 한 번 띄워주세요. 빨리 이동해야 되니까 오늘 내로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을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실제 그 법원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사건이 커지자 목사가 한 말이 참 씁쓸했다. 그는 “나는 국민저항권 밖에 말한 게 없다, 법원에 들어간 애들은 우리 단체가 아니다.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다”라고 했다. 내 말은 진리이지만, 내 말로 인해 벌어진 일과 아픔들에 대해 책임질 생각은 없다. 이런 수준의 교주들이 참 많은 세상이고, 결국 책임은 약자인 신도 개인의 몫이 된다.

2018년 신천지를 탈퇴한 사람들이 신천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 법원은 “신도로 포섭된 이후 친절과 호의가 순식간에 사라져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불안 심리 등을 이용했다”라며 피해 일부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종교적 가스라이팅에 대해 “종교를 선택하기 전·후 태도나 생활변화 등 여러 가정을 고려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이 사건에서는 피해 행위들이 “강압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만한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종교적 가스라이팅은 뒤늦게 스스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더라도 협박과 폭행 같은 명백한 강압이 없었던 이상 법적으로 배상을 인정받기가 힘들다.

그나마 이런 심리적 지배에 따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추진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법무부는 지난 2월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금까지는 민법상 사기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만이 취소 대상이었지만,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게 되면 교주와 신도 같은 심리적 지배가 이루어지기 쉬운 관계에서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내린 의사표시도 취소할 수 있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종교적 가스라이팅에 의한 재산 피해는 돌려받을 길이 열리게 될까? 지켜봐야 겠다.

/김세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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