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 신천지 평화의 궁전 앞엔 매주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71세의 김태순씨가 있다. 지인 소개로 1989년 신천지에 들어간 김씨는 30년간 노역에 시달리다 2020년 신천지를 탈퇴했다. 사역이라는 명분 하에 전도, 밥 짓기, 전단지 붙이기 등 온갖 일을 했지만 30년 믿음 생활의 결과는 헌금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남은 수천만 원의 빚과 풍비박산 난 가정이었다. 그는 신천지의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에 세뇌당해 벌어진 일이라며 신천지 교단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30년 세월이 원통해요. 지금도 젊음 사람들이 세뇌당해 인생을 낭비당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김씨를 보면 늦게라도 세뇌에서 벗어나게 된 그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탈을 쓴 악덕 교주의 세뇌에 빠져 가정과 재산을 잃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니 말이다.
민간인 폭도들이 법원을 부수고 침탈한 전대미문의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건도 종교적 가스라이팅과 연관되어 있다. 전광훈 목사는 폭동 사태가 일어나기 하루 전 집회에서 마이크에 대고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초헌법적 권리인 국민저항권을 통해 국가기관이나 그 기능에 대해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것도 정당하다”, “서부지방법원 주소를 한 번 띄워주세요. 빨리 이동해야 되니까 오늘 내로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을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실제 그 법원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사건이 커지자 목사가 한 말이 참 씁쓸했다. 그는 “나는 국민저항권 밖에 말한 게 없다, 법원에 들어간 애들은 우리 단체가 아니다.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다”라고 했다. 내 말은 진리이지만, 내 말로 인해 벌어진 일과 아픔들에 대해 책임질 생각은 없다. 이런 수준의 교주들이 참 많은 세상이고, 결국 책임은 약자인 신도 개인의 몫이 된다.
2018년 신천지를 탈퇴한 사람들이 신천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 법원은 “신도로 포섭된 이후 친절과 호의가 순식간에 사라져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불안 심리 등을 이용했다”라며 피해 일부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종교적 가스라이팅에 대해 “종교를 선택하기 전·후 태도나 생활변화 등 여러 가정을 고려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이 사건에서는 피해 행위들이 “강압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만한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종교적 가스라이팅은 뒤늦게 스스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더라도 협박과 폭행 같은 명백한 강압이 없었던 이상 법적으로 배상을 인정받기가 힘들다.
그나마 이런 심리적 지배에 따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추진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법무부는 지난 2월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금까지는 민법상 사기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만이 취소 대상이었지만,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게 되면 교주와 신도 같은 심리적 지배가 이루어지기 쉬운 관계에서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내린 의사표시도 취소할 수 있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종교적 가스라이팅에 의한 재산 피해는 돌려받을 길이 열리게 될까? 지켜봐야 겠다.
/김세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