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의 진정한 가치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이야기"
“우리가 지금 만나는 역사의 현장이 신비롭기도 하고 흥미로운 것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구 중구 근대골목은 서문시장, 약전골목, 계산성당, 제일교회, 3·1 만세운동길, 대구 최초 백화점 무영당 등이 연결된 역사 탐방로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고택, 국채보상운동 주역 서상돈의 자취, 화가 이인성의 감나무,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옛터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08년 시작된 골목 투어는 한국관광 100선에 여러 차례 선정됐으나, 세계적인 명소로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달구벌골목길연구소 김규인(66) 기획실장이 새로운 전략을 모색 중이다.
김 실장은 “대구근대골목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가치는 무궁무진하지만, 체계적인 보존과 홍보 부족으로 세계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올해 2월, 대구 지역 수필가 단체인 달구벌수필문학회를 모태로 연구소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골목길 톺아보기’ 행사를 통해 4개 조가 중구 일대의 피난 문학 중심지, 일제강점기 흔적, 근대 산업 골목, 이름 없는 골목을 탐방하며 골목길의 다층적 의미를 재발견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골목길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을 즐기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도 손이 얼어붙도록 뛰어놀던 그 순수함이 골목길의 본질 아닐까요?”라며 골목길이 단순한 통행로가 아닌 삶의 흔적과 역사가 응축된 공간임을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리용의 중세 돌길과 비밀 통로 트라불(Traboules), 이탈리아 피렌체의 골목길을 예로 들며 “대구도 스토리텔링으로 세계인의 발길을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구소는 두 차례 사진수필전을 개최해 호평을 받았으며, 이인성 기념사업회와 협력해 예술적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김 실장은 “골목길 탐사는 글쓰기의 중요한 영감원”이라며 “독자들이 글을 읽고 현장을 직접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10월부터 향촌문화원 등에서 열리는 ‘골목길 사진수필전’으로 일반인에게 골목길의 매력을 알릴 전망이다.
그는 대구시가 달성토성 등 역사적 골목길 보존에 소홀하다고 지적하며 “개발보다 원형 보존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골목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재생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연구소는 향후 법인화를 통해 골목길 탐사 결과를 책으로 정리하고, 국내외 단체와의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골목길의 진정한 가치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이야기 속에 있다”며 “이를 지키고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대구근대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자처한 달구벌골목길연구소의 노력이 골목길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