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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 띠풀이···영혼과 수호신의 승용동물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1-01 05:38 게재일 2026-01-0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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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세화 ‘두 마리 말의 도약’.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익살스러운 표정의 두 마리 말을 그려 새해의 활력과 유쾌함을 담았습니다. 전통 세화가 지닌 재복 기원과 재앙 소멸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용기 있게 나아가되 웃음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각기 다른 자세로 도약하는 두 말은 협력과 동반자의 가치를 상징합니다.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응원이자 희망의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챗지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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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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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상군천리 아래논들서낭당 신위와 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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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주인이 개마를 타는 모습(塚主着鎧馬之像)’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는 고구려 개마총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나를 따르라!”

세계사에 있어 위대한 영웅들은 말과 운명을 함께 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이라는 미증유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동갑내기 검붉은 말 부케팔라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의 붉은 적토마, 위기에 처한 나폴레옹을 수차례 구해낸 아라비안 종마 마랭고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 역시 평생을 말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다. ‘병(丙)’은 불의 기운을 갖고 있으며, ‘오(午)’는 12간지 중 일곱 번째 동물인 말을 나타낸다. 고래로부터 붉은색은 태양을 상징하며, 영원불멸의 힘, 열정 등 생명력과 재앙과 질병을 물리치는 이미지로 각인돼왔다. 말은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도전하는 상징적 힘의 이미지로 인식된다.
말은 시간으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방향으로는 정남(正南), 계절로는 양기(陽氣)가 왕성해지는 여름의 문턱에 해당한다. 말이 지닌 생동감과 박진감, 질주 본능은 단순한 생태적 특징을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확장돼왔다.

△영혼과 수호신의 승용동물 말, 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성한 존재
고대 문헌과 유물 속에서 말은 신성한 동물로 그려진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왕의 탄생, 나라의 흥망을 예시하며, 죽은 자의 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신화 속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백마가 남기고 간 붉은 알에서 태어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듯이 말은 속도전에 없어서는 안 될 전쟁의 무기이자 영혼을 태우고 하늘로 오르는 신성한 매개체였다. 안악3호분, 무용총, 쌍영총 등에 그려진 말은 사자의 혼을 태우고 저세상으로 향하는 ‘천마(天馬)’의 모습이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 개마총 벽화의 장식된 말은 ‘묘주가 탄 말’이라는 묵서(墨書)가 남아 있어 말 위에 영혼이 타고 있음을 상징한다.
신라의 마문·마형토기의 특수한 성장마(盛裝馬)는 등자가 달린 안장만 있고 사람은 타지 않아 말의 영매체(靈媒體) 기능을 한층 더 분명하게 나타낸다. 말 앞에 ‘총주착개마지상(塚主着鎧馬之像)’이라는 묵서가 있어 주인공이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이라는 뜻이 된다.

△무덤 속 말, 저세상으로 가는 탈것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마각문토기, 마형토기, 기마인물토기는 이런 관념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항아리 어깨에 새겨진 달리는 말, 아예 말 형상으로 빚어진 토기, 사람을 태운 기마 인물 토기까지 표현 방식은 달라도 의미는 하나다. 죽은 이가 말을 타고 저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는 이 상징의 정점이다. 백화나무 껍질에 그려진 하늘을 나는 백마는 왕의 영혼을 태우고 천상으로 오르는 존재로 해석한다. 말은 더 이상 땅의 동물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영물로 격상된다.
이러한 사상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왕이나 왕비의 장례에 사용된 ‘죽안마’는 몸체는 대나무로, 다리는 나무로 만들고 안장까지 갖췄다. 순장의 관습이 사라진 뒤에도 영혼을 태우는 말의 관념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생활 속으로 스며든 말의 상징
말은 교통수단이자 군사력, 농경과 생산의 중심 도구였다. 말의 갈기는 관모가 되고, 가죽은 신발과 주머니가 되며, 힘줄은 활을 만드는 재료가 됐다. 말과 관련된 지명만 해도 마장동, 마령재, 마이산, 천마산 등 전국에 740여 개가 넘는다. 대구 달성에는 마비정, 포항 구룡포의 말봉재도 있다. 
민속신앙에서 말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도 등장한다. 전국 각지의 서낭당과 당산에는 목마·석마·철마가 봉안돼 있다. 어떤 곳에서는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 어떤 곳에서는 풍요와 득남을 기원하기 위해 말을 모셨다. 재앙을 막고 복을 불러오는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속담과 놀이 속에서도 말이 빠지지 않는다. 윷놀이에서 ‘모’가 말에 해당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판을 바꾸는 힘이 말에 있었기 때문이다.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는 50여 가지가 넘는다. 말은 우리 인간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까닭이다.

△‘말띠는 드세다’는 속설은 오해
말띠를 둘러싼 속설 역시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인식은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니다. 조선 왕실만 보더라도 말띠 왕비는 여럿이다. 정현왕후, 인열왕후, 인선왕후, 명성왕후, 순정효황후가 그들이다.
이 속설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민속 인식이 유입되며 굳어진 미신으로 보는 게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오히려 말띠가 상징하는 것은 강인함과 활력, 이동성과 개척성이다. 역마살 역시 떠돌 운명이 아니라, 새로운 문물에 대한 동경과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으로 읽을 수 있다.

△오늘날 말은 어디로 달릴까
말은 힘차게 달릴 때 가장 말다워진다. 고대에는 하늘과 교통하는 영물이었고, 중세에는 제국의 확장을 이끈 동력이었으며, 근대에는 산업과 교통의 상징이었다. 오늘날까지 말이 주는 생동의 이미지는 영원하다. 소통과 확산, 변혁과 도약 등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겹친다. 
천금준마(千金駿馬)의 가치도 어떻게,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렸다. 영천혼을 태우고 하늘을 달리던 말은 이제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달릴 것인지는, 결국 말을 탄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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