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후,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렇게 덥던 여름이 끝나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절기 처서가 지났다.
걷기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집을 나서는 발걸음마다 기분이 상쾌했다. 도심 속에도 여기저기 산책하기 좋은 초록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환자복을 입은 흰머리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그 곁에 벤치에 앉은 할아버지가 무어라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바람은 초록나무 사이를 스치며 은은하게 불어왔다. 두 분은 오롯이 서로를 바라보며 오가는 얘기 속에 웃고 있었다.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내 발은 걷고 있지만 나의 눈길은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액자로 남았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도 인상 깊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저 스쳐 지나기에는 아쉬워, 조심스럽게 사진 두어 장을 몰래 찍었다.
부부는 인생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라는 사실이 두 분의 모습에서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 핸드폰에 사진을 담고도 그 눈길 떼지 못해, 일부러 그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용기를 내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순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아 그 주변을 몇 바퀴나 더 돌았는지 모른다.
짧은 인사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인사를 받은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기운이 전해졌다. 나는 그날 공원에서 노부부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두 분은 앉았던 자리를 정리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앉아계신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그곳을 떠났다.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은 잔잔한 울림으로 가득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배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사람마다 살아온 시간은 다르지만,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삶의 훈훈한 교훈을 남겼다.
진정한 부부의 모습이란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함께 걷고, 함께 웃고, 서로를 지켜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우연히 만났던 두 분의 모습을 행여 또 볼까 싶어 나는 휴일이면 공원을 걷는다.
/김영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