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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만 년 걸친 인류와 나무의 공생 관계를 탐구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09-25 17:41 게재일 2025-09-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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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청동·철 중심 전통 역사관 벗어나
목재가 문명 발전에 미친 영향을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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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숲 펴냄, 롤랜드 에노스 지음, 인문

“작은 영장류의 후손인 인류는 대체 어떻게 직립보행에 성공하고 최상위 포식자가 돼 세계를 호령하며 살게 됐을까? 인류는 어떻게 문명을 일으켜 세계 경제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최근 출간된 ‘나무의 시대’(더숲)는 목재가 인류 역사의 숨은 주역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영국 헐 대학 생물학과 객원교수이자 식물학·생체역학 전문가인 롤랜드 에노스는 6000만 년에 걸친 인류와 나무의 공생 관계를 탐구하며, 돌·청동·철 중심의 전통적 역사관에서 벗어나 목재가 문명 발전에 미친 결정적 영향을 조명한다.

저자는 목재가 인류의 진화, 기술, 사회, 건축, 환경에 미친 영향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산업혁명 이후 목재는 점차 화석연료와 대체 자재에 자리를 내줬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이제 다시 ‘나무’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는 나무가 어떻게 인간의 진화·기술·사회·건축·환경을 이끌어왔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목재로서 나무’의 독특한 성질을 활용할 줄 아는 우리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 사회와 삶을 근본적으로 빚어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땅으로 내려와 살기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목재는 분명 중심적인 재료였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한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운 좋게도 목재의 유용한 성질 가운데 두 가지를 활용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 첫 단계로 초기 인류는 목재가 마르면서 단단해진다는 성질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땅을 파는 데 사용할 막대기를 만들어 새로운 식량원을 획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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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백두대간 수목원 전경. 사진은 특정기사와 상관 없음.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제공 

두 번째 단계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Homo) 속에 속하는 초기 구성원들은 마른 목재가 불에 잘 탄다는 성질을 활용했다. 덕분에 불을 피워 포식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음식을 요리해 먹을 수 있게 됐다. 

결국 나무에서 나는 재료인 목재와의 관계가 급성장한 것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나무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나무와 목재가 전 세계에서 이뤄낸 문명의 장대한 이야기는 인간 문명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동남아시아와 서아프리카에서는 나무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형 유인원의 뇌를 자극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600년 이상 끄떡없는 세계 최대 규모의 궁궐인 자금성과 서기 600년경 세워진 호류지 5층탑이 빈번한 대형 지진을 견디어 왔고, 유럽에서는 목재를 변형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만들고 책과 신문을 만들 종이를 공급했다. 영국은 목조선으로 제국을 건설했으며, 19세기 아메리카의 신생국가는 거대한 산림에 의존하여, 주택·철도·가축우리·다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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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헐 대학 생물학과 객원교수이자 식물학·생체역학 전문가인 롤랜드 에노스는 ‘나무의 시대’에서 목재가 인류의 진화, 기술, 사회, 건축 등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목재의 역할이 단지 긍정적인 면에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목재로 만든 무기의 발달이 우리를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었고, 그 결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량 멸종을 불러오기도 했다. 우리는 농경을 통해 환경을 바꾸는 기술을 익히기도 전에, 나무 도구를 이용하여 거대한 짐승들을 죽여 없앴다. 유럽에서는 매머드와 털 코뿔소, 메갈로케로스(거대 순록), 아시아에서는 거대 오랑우탄, 북아메리카에서는 마스토돈과 말, 테이퍼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이뿐만 아니다. 나무로 만든 활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주목나무로 만든 장궁(큰활)이 대표하듯이, 목재로 만든 활이야말로 15세기까지 명실상부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량살상 무기였다.

영장류학·인류학·고고학·역사학·건축학·공학·목공학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지식과 최근 연구 결과를 정교하게 엮어냄으로써 이야기의 스케일은 장대하고, 그 속을 채우는 지식과 통찰은 깊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깊이 있는 지식의 확장과 과학적 근거와 인문적 서사의 완벽한 조화에 있다. 여기에 저자의 흡입력 있는 문장과 치밀한 구성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결코 가독성을 해치지 않는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단편적 정보가 아닌,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지식의 네트워크를 경험하게 된다. 

본문 중에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컬러 화보 23컷이 실려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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