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십 년간 탄소는 지구의 적이었다. 정부와 기업은 ‘탄소 중립’을 외치며 화석 연료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대중은 탄소 배출을 죄악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폴 호컨은 신간 ‘탄소라는 세계’(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그는 “탄소는 생명의 모든 자취에 활기를 불어넣는 공학자이자 제작자”라며 탄소가 단순한 오염원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기원임을 강조한다.
지난 60년간 환경운동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녹색 구루(guru)' 호컨은
2019년 ‘플랜 드로다운’, 2022년 ‘한 세대 안에 기후위기 끝내기’에 이어 국내 출간된 이 책에서 탄소가 어떻게 죽은 암석 덩어리였던 지구를 생명이 넘치는 행성으로 변모시켰는지를 서사시처럼 풀어낸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를 ‘범죄자’가 아닌 ‘새로운 세계의 안내자’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책은 총 15장으로 구성된다. 첫 장 ‘생명의 춤: 탄소에 대한 오래된 오해’에서 호컨은 인간이 지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망상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탄소는 흐른다’에서는 생명체의 탄생과 죽음, 재생 과정에서 탄소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생물학적·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특히 ‘별빛을 먹다’와 ‘유사 식품’ 장에서는 현대 식품 산업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가공식품과 초가공식품이 인류를 병들게 하는 현실을 경고하며, “개보다 뛰어난 인간의 후각”을 잃어가는 세태를 비판한다. 한편 「나노 기술의 시대」에서는 탄소 나노튜브와 같은 혁신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전망하면서도 윤리적 고민을 제기한다.
생태계의 숨은 주인공들도 조명받는다. ‘곰팡이 왕국’에서는 균류가 탄소 포집과 분해에 기여하는 역할을, ‘곤충의 붕괴’에서는 작은 생명체가 생태계 균형을 지탱하는 중요성을 역설한다. 호컨은 “곤충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며 아마추어가 주도하는 생태 보호 운동의 가치를 강조한다.
호컨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탄소는 생명의 재료이자 문명의 토대이므로, 이를 적대시하는 것은 자기 부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녹색혁명으로 대표되는 산업화된 농업이 토양을 죽였다”며 “엉망진창인 농업 시스템 대신 미생물의 회복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식의 전환’ 장에서는 “지구가 스스로를 구할 것”이라며 일곱 세대 뒤를 생각하는 원주민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촉구한다.
저자는 나비 효과, 미세 조정 이론, 야마나어 멸종 등 다양한 사례를 엮어 탄소가 인류사와 어떻게 교차하는지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특히 “우리는 죽은 별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우주적 차원에서 탄소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탄소라는 세계’는 환경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탄소를 ‘적’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운다.
호컨은 “탄소 중립 정책이 산업계에 면죄부를 주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해결책은 자연의 재생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자연의 순환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숲을 ‘탄소 저장고’로 보는 시각 대신 “생태 다양성의 보고”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인류는 탄소와 싸워야 할까, 함께 춤춰야 할까?”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지금, 호컨의 도전적인 통찰은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