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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범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09-18 17:39 게재일 2025-09-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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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행동경제학자 맥스 베이저먼
조직·사회를 병들게 하는 ‘묵인과 방조’
명령·분위기·관행에 따른 복종적 심리
공포의 함정 조직 내 비윤리 대응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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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펴냄, 맥스 베이저먼 지음, 인문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당일, 상부 명령에 따라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장병들은 책임을 져야 할까? 기업에는 도움이 되지만 사회에는 해로울 수 있는 경영 전략을 제시한 컨설팅 회사나,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목표치를 제시해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조장한 경영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성범죄나 조직 내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묵인한 사람들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행동경제학자 맥스 베이저먼의 신간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민음사)는 조직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공모(共謀)’의 구조적 문제를 파헤친다. 그는 침묵과 방조가 어떻게 집단적 악으로 이어지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베이저먼은 다년간의 연구 및 컨설팅 경험과 함께 자신이 부정행위에 연루된 사례까지 낱낱이 밝히며 평범한 우리 누구나 공모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명백한 공모’와 ‘일상적 공모’의 일곱 유형을 통해 비즈니스, 조직, 정치, 사회에서 나타나는 공범죄에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들과 잘못된 행동을 무시하거나 묵인하거나 지지하게 될 수 있는 심리적 함정들을 살피고 피할 전략을 제시한다.

◇공모의 덫을 방치하면 기업도 조직도 사회도 퇴보한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는 사회적 스캔들의 배후에 숨은 공모자들의 역할을 조명한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폭력에 눈감은 체조협회와 올림픽위원회처럼, 가해자에 맞서야 할 리더들이 사실을 외면한 사례를 들며 공모자의 행위에 주목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자들의 책임이 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공범이 돼 주는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공모를 통해 악행을 조장하거나 방조한다면 같은 사람들이 행동을 달리함으로써 악행을 저지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누구나 빠질 수 있는 공모의 함정
사람들은 왜 타인의 부정행위에 동참할까? 예를 들어, 동료가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의혹이 있어도 “증거가 없고 회사에 도움된다”는 이유로 묵인할 수 있다. 공모는 악의적 동조뿐 아니라 분위기 순응, 권위 복종, 관행 묵인, 구조적 특권 인식 부족 등 다양한 심리로 발생한다.
행동윤리학을 비롯해 여러 분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복잡한 사건을 단순화해 주범에만 집중하고 공모자를 간과하며, 간접적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한 특정 목표에 매몰되면 윤리적 판단이 흐려지고, 불확실할 땐 행동보다 방조를 선택한다. 이처럼 누구나 무의식중에 공모에 휘말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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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베이저먼의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는 조직과 사회의 공모 구조와 일상적 공모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공개적 비판·도덕적 기준 확립·맹점 경계·연대 강화 등을 통해 개인의 공모 참여를 차단하는 실천 방안을 제시하며 사회적 책임 의식을 촉구한다. 사진은 지난 13일 서울 도심에서 한국의 진보성향 단체 촛불행동의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무더기 구금사태와 관련해 미국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 모습. /연합뉴스=촛불행동 유튜브 캡처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련 없음>

◇공모의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는 법
공모자가 되지 않으려면 공모의 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물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명확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인간은 미래의 행동을 계획할 때는 도덕적인 선택을 더 많이 하지만, 실제로 행동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직 내 비윤리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적 조언을 제시한다.
△공개적 비판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인다

조직 내 영향력을 키워 처벌 위험을 줄이고, 결정적 순간에 목소리를 낸다. 동료와 연대해 비윤리 개선에 힘쓴다. 

△도덕적 가치 사전 숙고

핵심 가치를 미리 정립하면 비윤리적 선택을 거부하기 쉬워진다. 

△맹점 인지

단일 원인 오류, 부작위 편향, 간접적 해악 심리 등을 경계해 타인의 행동을 신중히 평가한다. 

△관계 확장

소속 집단에만 매몰되지 않고 외부와 연결될 때 공동선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기 쉽다. 

△집단행동 촉진

트럼프 정부 시기 법무부 간부들이 집단 저항으로 장관 해임 시도를 막았고, 인구조사국 연구원들도 데이터 오용을 거부했다. 밋 롬니와 시몬 바일스 역시 권력형 범죄와 시스템적 문제에 맞섰다.

저자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공모자가 되는 일을 전적으로 피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공모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을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잘못을 조장할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악인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평범한 이들이 알게 모르게 연루되는 공모를 경계하고 거리를 둔다면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미치는 사람들에게 제동을 걸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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