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이대환 작가 장편소설 ‘붉은고래’ 개정 증보판 출간
‘한반도의 살벌한 격랑을 헤쳐 나간 허 씨 삼형제의 대서사시. 분단 조국을 품고 순정한 신념으로 삶을 견뎌낸 청춘들의 사상 여정.’
광복 80년이 곧 분단 80년을 기록한 지금, 포항 출신 삼형제가 젊은 날 걸어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포항 출신의 중진 이대환(67) 작가의 장편소설 ‘붉은 고래’(아시아)가 출간됐다.
760쪽의 두꺼운 책에는 ‘1945년 해방 후, 이 땅 모든 청춘의 사상 여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140개의 소제목으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마치 기나긴 에세이를 쓰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째(허경민)는 가족을 북녘으로 보낸 조총련 간부, 둘째(허경윤)는 1980년대 초반 남한의 막강 권력자, 막내(허경욱)는 일본으로 밀항해 큰형을 만난 뒤 동해를 종단하다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붉은 고래’의 첫 장면은 공민권을 회복한 허경욱이 21세기 초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작은형 허경윤의 아들 허시우(영문학 전공 유학생)와 조우해 ‘마르크스 묘소’를 찾는 모습이다. 이후 두 사람은 달포에 걸쳐 유럽 대륙을 거의 한 바퀴 돌며, 허경욱이 조카 허시우에게 삼형제의 젊은 날과 가족사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종착지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그곳에서 허경욱은 큰형 허경민의 아들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관을 단 한 번이라도 만나겠다는 불확실한 약속을 기다린다.
유럽 여행을 마친 허경욱이 자신의 아들과 딸을 미래의 독자로 상정해 노트에 적어 내려간 이 소설은 날줄과 씨줄을 선명히 드러낸다. 날줄은 일제 말기부터 21세기 초까지 포항, 서울, 일본, 북한 등을 오가며 분단과 이념의 격랑 속에서 살아간 삼형제의 실화다. 씨줄은 허경욱과 허시우가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나누는 대화로, 허경욱의 예리한 시선이 21세기 유럽의 풍경과 인간 군상을 포착해 자신의 사상에 투영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실존 인물 허경민은 오래전 북한에서 사망했고, 허경욱은 고향에서 눈을 감았으며, 허경윤은 인생의 황혼에서 고독하게 정치판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세월이 묻어버린 그들의 실제 발자국은 소설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작가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허경욱을 역사의 법정에서 불러내듯 생생하게 재현했다. 분단과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의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십수 년간 감옥 생활을 견딘 뒤 가석방으로 풀려난 허경욱. 그의 최후 진술과 최후 판결문을 경청한 후에도 작가는 그가 치열하게 추구했던 ‘완전한 세상’과 인간적인 또 다른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 집요하게 파고든다. 소설은 후반부에서 허경욱의 ‘오래된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2004년 전 3권으로 처음 출간된 뒤 2023년 가을 ‘문학뉴스’에서 재연재되며 20년 만에 독자와 다시 만난 이 소설을, 작가는 이번 개정 증보판으로 새롭게 묶었다.
이대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햇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지만, 광복의 햇빛이 만든 분단의 어둠은 여전히 한반도를 덮고 있다. 남북을 종단하느라 멍투성이가 된 ‘붉은 고래’의 영혼에 이 책을 바치며, 경계가 사라진 자유로운 바다에서 찬란히 유영할 그 날을 기원한다”고 적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