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美 통상 압박에 ‘사과 수입 검토’ 지시… ‘사과 빗장’ 풀릴까 불안 사과 생산 60% 경북, 수입 개방땐 가격폭락 불가피… 총력 대응 나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수입 농축산물 검역 당국인 농림축산식품부에 미국산 사과 수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1993년부터 우리나라에 사과 수입 위험 분석을 신청했으나 33년째 8단계 검역 절차 중 2단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방침이 확고한 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우리나라와 국내 사과농가다.
외국산 사과의 검역 절차가 수십 년 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국내 농가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부가 막아 왔기 때문이다. 미국 뿐 아니라 일본·호주 등 사과 수입 위험 분석을 신청한 11개국 중 검역을 통과한 곳은 지금껏 단 한 곳도 없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사과는 현재 국내 전체 과일 중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과일이다. 재배 면적은 올해 기준 전국 노지 과수 재배 면적의 23.3%에 달한다.
사과농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이 수년째 사과를 비롯한 농산물 수입 위험 분석 절차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으로 지목하고 있는 부분을 눈여겨봐 왔다. 언제까지 방어벽을 칠 수 있을지 늘 노심초사한 사안이었다.
생산량이 전 세계 2위인 미국산 사과가 들어올 경우 당장 국내 사과 농가의 소득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 사과농 초토화 불가피
대표적인 농도인 경북 경우 우리나라 사과의 최대 생산지다. 경북은 전국 과실 총생산액 6조 3075억원 중 2조2407억원을 생산해 전체의 36%를 담당하고 있다.
사과의 경우 전국 총생산액 1조3769억원 중 8247억원에 달해 60%를 차지한다. 사과하면 경북인 셈이다. 청송과 안동, 영주, 봉화 등지에서 생산된 사과는 품질면에서도 압도적 평가를 받아 왔다.
생산량은 28만6000t으로 전국 생산량 46만t의 62%에 이른다. 재배면적은 1만9000ha에 1만8000여가구가 종사하고 있다. 품종은 후지가 67%로 가장 많으며 홍로 15%, 감홍 4%, 시나노골드 2%, 쓰가루 2% 등이다.
경북도의 경우 미국산 수입사과가 들어올 경우 아직은 정확한 피해규모를 예측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과는 아직 한 번도 수입되지 않았고, 또 어떤 식으로 협상이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자료를 취합하는 등 관련동향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최근 최예준 부산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가 한국농경제학과 학술대회에서 사과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국내사과 생산량 대비 55~61%수준의 사과가 수입될 것으로 예측해 실제 피해는 상상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2024년 국내 사과생산량 46만t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25만3000~28만600t 수준의 미국산 사과가 국내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수입액은 4억2778만 달러로 추정하고 이로 인해 국내 사과 가격은 55~65%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뿐일까
경북도의 현재 대책은 무조건 사과수입을 막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나 미국 측의 주장이 완고해 그렇게 될 리는 없어 보인다.
경북도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경북도는 정부의 동향을 체크하며 꾸준히 지역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정부가 빗장을 풀 경우에 대비해서도 후속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경북도의 또 다른 시름은 미국 사과가 허용되면 중국사과도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가까운 산동성에서 사과가 대규모로 생산되는 만큼 빗장이 열릴 경우 후폭풍은 미국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여러 경로를 통해 정부부처에 사과수입 반대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에 수입으로 갈 경우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정부차원의 대책을 본 후 경북도 차원의 대안 등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