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청송은 거대한 산불을 겪었다. 푸르던 산과 마을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수많은 군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불길은 단지 산을 태운 것이 아니었다. 울부짖는 사람들, 타들어간 과수원, 무너져 내린 생계의 끈들… 그 현장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군민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이었다.
그러나 청송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외면하지도 절망에 주저앉지도 않았다. 상처를 껴안은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립주택 설치와 생계비 지원 같은 긴급한 대응은 물론, 산림 복구를 포함한 장기 재건 계획까지 행정과 민간이 함께하며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걸음은 단순히 원상 복구에 그치지 않는다. 청송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시 다지고 있으며, 공동체가 다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꿈꾸고 있다.
이 산불은 청송에 닥친 재난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가 직면한 기후위기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과 폭염, 초대형 산불, 집중호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이제 더 이상 일시적 자연현상이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청송 역시 최근에는 대형 산불에 이어 예기치 못한 우박 피해까지 더해 농업 현장의 불안이 현실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박한 현실이다.
청송은 이러한 기후 위기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청송의 자부심인 ‘청송사과’가 있다. 1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선정된 청송사과는 이제 품질 경쟁을 넘어 기후 변화에 강한 지속 가능한 미래형 스마트 농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황금사과연구단지 조성이 그 출발점이다. ‘우량 사과묘 보급’과 ‘농업용 유용 미생물 생산 및 공급’을 추진하고, 실증시험포장 운영을 통해 ‘5연동 사과재배 하우스’, ‘황금사과 수형별 비교시험포’ 등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무적엽 사과, 꼭지 무절단 사과 도입 등으로 청송사과의 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냉해, 병해충, 이상기온에 대응한 첨단 재배기술도 현장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품목으로 농가의 소득원을 다변화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업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청송의 미래를 지탱할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대한 변화다.
청송은 농업뿐 아니라 사람과 공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청년과 가족이 돌아오고 싶은 고장, 어르신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들기 위한 공간 재설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체결한 농촌협약을 통해 총 346억 원 규모의 생활권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며 진보면을 비롯한 부남·현동·안덕면 등 각 지역에 복합커뮤니티 공간, 문화·복지시설, 주거 인프라가 조성되고 있다. 농촌에도 도시의 품격을 더한 삶터가 조성되면서 인구 유출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청송읍에 올해 말 준공 예정인 공공임대주택은 원룸 44세대로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이어 2027년 준공 예정인 진보면 공공임대주택(110세대)은 대규모 청년 주거단지로 청년층의 유입과 정착을 견인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청송군 K-U시티 역노화 사업’을 통해 지역특산물 기반의 상품 개발, 공동연구와 창업지원, 역노화 산업 연계 인재양성 등 청년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산불 피해가 없었던 산남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 개장한 산남 파크골프장은 최신 시설을 갖추어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쾌적한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선 지중화 사업도 지역 경관 개선과 안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반시설과 생활환경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청송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청송은 산불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시련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회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쌓여가는 노력 하나하나가 바로 청송의 미래를 지탱하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농업을 넘어 삶터 전반에 걸친 변화, 위기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혁신이야말로 청송의 다음 100년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산불이 청송의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청송은 오늘도 꿋꿋하게 걷고 있다. 아픔을 딛고, 변화를 품고, 미래를 그리며. 그 걸음은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