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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뭐라고”

이희정 시인
등록일 2025-04-20 19:09 게재일 2025-04-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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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마음이 있었는데요

사라졌습니다

 

고장 난 사람처럼 야구만 보았습니다

공이 뭐라고

공은 분명한데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니까

개의 마음을 알 것 같고

공의 궤적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보는 동안

아픈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공을 보는 개의 마음은 알아도

나를 보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겠는데

엄마는 내가 멀쩡해 보여요?

아름다움처럼 모르겠는데

나 없이 내게로 오는 그 마음들은

(…)

온 힘을 다하여 야구를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매일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전화기를 잊을 때까지

(….)

내가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어리석지 않으려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포지션이 없으면 게임이 안 되고

응원하는 팀이 없으면 야구가 재미없습니다

(….)

야구가 끝나면

아픈 사람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답장합니다

사회보장제도를 알아보자고 말합니다

의사가 알려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따라서

(….)

맥주가 지겨워요

사라진 마음이 지겹습니다

공은 왜 자꾸 돌아와?

 

―남현지,‘실업자가 야구 보는 이야기’부분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2024. 창비)

 

고장 난 사람처럼 공만 바라보고 있다. 공이 계절을 물고 몇 바퀴를 돌고 도는 동안. 인용 시의 중략 부분처럼 보다가 잠시 멈추는 식으로 내내 반복된다. 그것은 관람객만의 문법이 아닐 것이다. 감독에 가까운 투수였던가 포지션은 중요치 않다.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었는데 늘 이해하는 팬의 입장처럼 말이다.

 

남현지 시인은 부조리한 어떤 풍토나 공간, 시스템 혹은 대상에 대해 무감한 듯 반응한다. 시집 전체에 두루 포진해 있는 화자들은 “어딘 가의 직원” “일행” “관람객” “모르는 사람” “관리인”의 포지션으로 일관된 보법을 보인다. 한 시인은“당근 거래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라고. 가장 짧은 대면의 순간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무례하지 않으면서 거래 후 그 즉시 “몰랐던 사람”으로 총총 사라져야 하는 것. 자본주의적 인간과 인간이 대면 하는 방식이다. 최근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을 일컫는‘자낳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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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시인

남현지 시에는 구조적으로 불화가 내장되어 있지만, 그는 첫 번째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시종일관 개입하지 않는다. 이러한 거리두기 혹은 객관화의 방식이 외려 독자를 부조리한 공간에 밀착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래서인지 시집 해설에서 전승민은 “시가 우리를 위무하는 방식이 아닌 외려 “우리가 시를 위로할 수 있지도 않을까?”를 타전하고 있다.

 

가령 “그가 자신의 숨은 마음을 열어두는 행위는 고작 누설에 그치고 마는데, 그의 들끓는 마음은 모든 시의 상연이 끝난 뒤에도 안전하게 밀봉되어 있을 따름”이며,“그 감금이 발휘하는 거대한 고독을 감지할 때 우리는 화자가 제발‘덜’건강해지기를, 나아가 급진적으로 아픔을 호소하기를, 시가 불손해지기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인용되지 않은 시 “행복의 문턱”에서의 다음 구절처럼.

 

“개나리를 터뜨린다, 내가 개의 목줄을 밟고 지나간다, 그대의 개가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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