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br/>세계경제 휘청이는데 100일 넘도록 거꾸로 달린 대한민국<br/>미움과 원망 내려놓고 미래를 향해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4일 8 대 0 전원 일치로 탄핵을 선고했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탄핵 소추된 지 111일 되는 날이다.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50년 이상 과거로 돌렸다. 온 나라가 두 쪽났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핏대를 세웠다. 모두 나라가 잘못될까, 걱정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상대의 말에는 귀를 막고, 걱정만 앞세워 서로 손가락질했다. 심리적 내전(內戰)으로 치달았다.
이제 결론이 났다. 훌훌 털고, 하나가 될 때다.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하게 돌아볼 때가 됐다. 100일이 넘는 시간 대한민국은 거꾸로 달렸다. 세계는 전쟁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인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는 더 혹독한 겨울이 닥쳤다. 트럼프가 손볼 나라에서 한국을 빼놓지 않는다. 하나로 뭉쳐도 힘겹다. 우리끼리 멱살을 잡을 여유가 없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이 지적하듯 대화와 타협, 정치로 풀 것을 법에 매달렸다. 설득하고, 양보할 것을 힘으로 누르려 했다. 민주주의의 힘은 대화와 양보, 포용에서 나온다. 그래도 현명한 국민은 헌법의 틀 안에서 위기를 넘겼다. 연일 수십만 인파가 거리에 나섰다. 서울서부지법 사태에서 잠시 위기를 맞았다. 그렇지만 현명한 국민은 질서를 지켰다. 극도의 흥분 속에서도 폭력으로 흐르지 않은 건 우리 모두의 승리다.
원망하지 말자. 증오심을 내려놓자. 탄핵을 반대한 사람은 승복하고, 찬성한 사람은 미움을 내려놓자.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 나섰다. 생각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헌재 판결을 존중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또 다른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활동을 금지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헌재 결정을 존중하고, 제도로 굳건히 다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두 달 안에 선거다. 헌정 중단의 비극은 결국 투표한 우리 책임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헌법을 뛰어넘으려 하면 자기 발등을 찍는다. 국민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투표다. 표를 얻으려고 돈을 뿌리는 아첨꾼, 거짓말하는 사기꾼, 절제와 포용을 모르고 흥분하고, 돌발행동하는 정치꾼은 배제하자.
1987년 체제에서 취임한 8명의 대통령 가운데 2명이 탄핵당했다. 또 한 명은 비극으로 끝났고, 두 명은 수감됐다. 8명 가운데 5명이 불행한 퇴임을 맞았다. 나머지 3명도 가족이 수사받고, 감옥에 가는 아픔을 겪었다.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5년 단임제는 사실상 무책임제다. 일단 당선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야당 대표를 한번 만났다. 예산안 설명도 하지 않았다. 야당은 줄탄핵과 예산 순삭감으로 대응했다. 대통령과 거대 야당이 함께 폭주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정상적인 정치가 될 수 없다.
선거제도는 더 참담하다. 유권자 뜻과 국회 구성의 차이가 크다. 22대 지역구 선거에서 45.1%를 득표한 국민의힘은 35.43%인 90석을 차지했다. 50.5%를 득표한 민주당은 63.38%%인 161석을 차지했다. 서울에서는 더 심하다. 득표율은 46.29%(국민의힘) 대 52.23%인데, 의석수는 23%(11석) 대 77%(37석)다. 5.94%p 표를 더 얻어, 의석은 3.4배를 가져갔다.
많은 전문가가 승자독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구조적으로 국민의힘이 불리하다. 그런데도 영남권 국민의힘 의원들이 현행 제도를 고집했다. 본인들이 당선되기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은 임기 말, 위기가 닥쳐서야 개헌과 선거제 개혁을 꺼낸다. 노무현·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모두 물러날 위기 속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실현될 리 없다.
87체제가 한계에 부딪혔다. 시간에 쫓겨도 후보들의 공약은 받아야 한다. 탄핵을 둘러싼 미움과 원망을 털어내자. 과거에 매달리지 말자. 미래를 보자.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힘을 모으자. /김진국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