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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살아온 마을… 하루 아침에 잿더미 ‘절망’

피현진기자
등록일 2025-03-30 19:52 게재일 2025-03-3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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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폐허로 변해 갈곳 잃어<br/>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 하소연<br/>대피소엔 정치인에 사람들 몰려<br/>마치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 ‘한탄’
‘괴물 산불’로 불리며 경북 북동 부권 5개 시·군으로 확산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낳은 산불의 주불이 발화 149시간 만인 지난 28일 오후에 꺼졌다. 이번 불로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경북 5개 시·군에서 사망 26명, 부상 31명 등 57명의 사상자(29일 현재)가 나왔고, 축구장 6만 3245개, 여의도 156개 면적의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다. 29일 오후 안동시 일직면 국곡리 상공에서 180도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한 의성과 안동 산불 피해 현장의 모습. 어느 방향으로 바라봐도 모두 잿더미로 변한 처참한 모습이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요. 산불에 집을 잃었고, 밭에 있던 하우스도 이미 다 타서 뼈대만 남았어요, 마늘이고 양파이고 건질게 하나도 없네요.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30일 만난 임 모(68·의성)씨는 임시 대피소에서 하루 하루를 눈물로 시작한다. 그녀가 살던 곳은 단촌면 구계리이다. 고운사 뒷산이 화염에 불타는 모습을 보고 급히 대피한 임씨는 한평생 살아온 마을이 폐허가 된 것만 보고 다시 이곳 대피소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뭐라도 건질 것이 있나 해서 집으로 갔지만 오히려 머릿속에 폐허가 된 마을만 각인됐다.

임씨가 본건 검은색 절망 뿐이었다고 한다.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는 “우리 마을이 오지 취급을 받지만 그래도 동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마을이었어요. 노인들 뿐이었어도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을이 흔적없이 사라졌어요. 절망, 그게 어떤 것인지 실감했죠”라며 고개를 숙였다.

같은 동네 이 모(71)씨의 집도 이번 화마에 검은 재만 남겼다. 이 씨는 “집이 다 타서 갈 곳이 없어요. 동네 사람들 전부가 그날 안 죽어서 이러고 있지요, 남은 것이 없으니 그곳에 돌아간들 속만 타지요. 내 심정은 그날 산불보다 더 크고 활활 타고 있다고 말해도 거짓이라고 할 사람이 없을거에요”라며 가슴을 쳤다.

이어 “그 동네 산지 40년 됐어요. 22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았으니 한 평생 산거라고 말해도 되지요. 몇해 전 남편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으니 이제 나도 이 동네를 떠나야지요. 자식들한테 가려고요. 자식 눈치 보기 싫고, 반갑다는 소리 못 들어도 당장은 자기들 사는데로 가자고 하니까. 무슨 미련이 남겠어요. 이제 자식 따라 나서야지요”라며 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산불은 꺼졌지만 이날 대피소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아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대피소 입구에는 ‘사진촬영금지’라는 글도 크게 나붙었다. 워낙 큰 피해가 난 산불이다 보니 여야 정치인을 물론이고 온갖 사람들과 기자들이 몰려 사진을 찍으면서 성가시게 하다보니 급하게 써서 붙인 듯 했다.

한 어르신은 “(우리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아 상심이 큰데, 방송이고 신문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대피소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으니 우리가 마치 구경거리가 된 것 같다”며 “정치인들도 사진만 찍고 가면서 먹잇감을 던지듯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그 말이 그저 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산불은 꺼졌지만 그 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아직 대피소에서 자신들의 삶을 앗아갔던 그 ‘악마’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원망만 할뿐 어떤 복수도 할 수 없는 그 화마를 놓고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억울함의 눈물로 서로를 달래는 것 뿐이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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