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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長鬐) 읍성1

등록일 2025-03-12 18:32 게재일 2025-03-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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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尤菴)과 다산(茶山)이 잠시 머물렀다고

그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영일만(迎日灣)은 저리 푸른데,

결국엔 촌구석이란 이야기지

그러나 사람의,

그리고 아주 먼 일별(一別)의, 꿍쳐놓고 싶은 공간,

지금도 유효한 지도 몰라

반성은 습관으로 반복적이었을까

역모(逆謀)는, 분노는 꿈도 꾸지 못하고

서울을 향하는 삶, 그 농밀하고 내면적인 지향(志向),

그렇게 팽개쳐진 삶

그래도 구룡포(九龍浦)와 모포(牟浦)와 하정리(河停里)의 바다는

고요하고 무심하며 여전히 생기발랄

그래서 우리는 뇌록지(磊綠地)2를 관찰하고

날물치3의 시원(始元)을 본다

외지(外地)여도 보석인 땅이 곳곳에 있더라

뭉개고 자빠져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음의

즐겁고 처절한 마스터베이션,

유림만보(儒林漫步)4한들 세상이 움직일까,

나의 용도폐기 뒤엔 세상이 있었다

비로소 고운 모래밭을 걸으며

받들어야 할 백성들의 생활을 기웃거리며

배워야 할 것들, 먹거리를 생각함

끝내 청보리밭 끝 모퉁이에서 오줌을 누고

비로소 세상과 결별하고 다시 세상과 조우(遭遇)함.

타박타박 걷고 싶으면 장기읍성에 가면 된다.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나에게로부터 유배(流配)를 받았기 때문이다.

1. 경북 포항시 장기면 읍내리에 있는 고려, 조선시대의 읍성터.

2. 뇌록은 중간 명도의 탁한 녹색의 돌로 단청의 바탕칠에 사용되는

전통안료가 추출, 장기면이 국내 유일의 산출지로 인정되었다.

3. 생수암(生水岩), 바위 사이로 생수가 나오는 곳의 지명.

4. 愉를 儒로 바꾸어 보았다. /이우근

이우근 시인, 박계현 화백
이우근 시인, 박계현 화백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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