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 찬물 한 그릇 마시고
안개를 뚫고
어제 씻어 놓은
찹쌀떡처럼 찰진 검정고무신을 신고
양철대문을 밀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도 걷고 있습니다
식구들에게 여러 모로 미안스럽지만
결코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뻔뻔하기도 하고 많이 닳았지요
때는 덜 타지만 도무지 멋대가리 없는
검정고무신이 아직도 신작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슬에 미끄러지는 것이 약점이고
빗물에 강한 것이 장점이지만
어정쩡한 위상(位相)과 얕잡아 보는 시선에는
속수무책이었지요
난들 왜 기차표 운동화이고 싶지 않았겠어요
단지 질기다는 경제적 이유로 발바닥과 열을 낸 나날들
그렇게 소모되어도 따뜻한 것이 되고 싶었지요
가끔 송사리를 가두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음이
너무 기특했어요
아직 걷고 있음이 사양하고픈 축복이지만
그렇지만 날이 저물어도 우리는 가야 해요
열심히 달리면 공짜로 공책과 연필도 생기는
그 화려한 축제는
가을 하늘에 고스란히 남아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해요.
소풍과 더불어 운동회는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다. 알싸한 사이다는 왜 그리도 달콤한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펄럭이는 만국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꿈이 얼마나 원대한 것인지 절실히 느껴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