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 연휴 끝에 자리한 주말을 경주에서 보냈다. 촉촉하게 비가 내려 아침이지만 어둑하다. 덕분에 늦잠을 자고 설을 보내느라 바빴던 몸을 잠시 쉬었다. 아침이라 하기엔 늦은, 남이 해주는 돌솥 정식을 점심으로 먹었다. 그러고 찾아간 경주문화예술회관은 주차장부터 조용해서 좋았다. 주말은 늘 복잡해서 힘들었는데 초현실주의 전시가 생소해서인지 관람객이 적어 그림 감상하기에 참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1920년대 파리에서 시작된 예술 및 문화 운동으로, 다다이즘에서 나아가 현실을 초월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다. 다다는 아기가 옹알이할 때 내는 소리이고 아무 뜻이 없다. 비행기 전화기 같은 물건들이 생겨난 격변의 시대에 그 모든 발명품이 전쟁에 쓰이며 1천만 명 이상 살해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고 예술가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래서 꿈과 상상 무의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해서 반쯤 잠든 상태 같은 식으로 표현하고, 보는 이는 예상하지 못한 그림을 통해 각자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든다.
초현실주의를 이끈 막스 에른스트의 직업은 다양하다. 화가이자 시인이며 보석디자이너였고 사진가였다. 기록에 15가지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부인이 4명이었고 동거인이 넷이다. 아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현실에서 삶이 초현실적인 듯 말이다. 이번 전시는 막스 에른스트로 시작해 막스 에른스트로 끝을 냈다. 세 가지 섹션으로 나누었는데 처음도 막스 에른스트, 마지막 방은 그의 부인의 그림들로 채웠다. 첫 섹션의 손에 든 모자, 머리에 쓴 모자라는 작품은 피식 웃음이 났다. 마지막 방의 그의 마지막 부인 도로시아 태닝이 만든 의자에는 꼬리가 달렸다. 왜 꼬리를 달았냐는 질문에 그냥 천이 남아서였다니,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부부다.
초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초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말하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영향을 받은 무의식의 세계, 혹은 꿈의 세계를 말한다. 미술가들은 주로 콜라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등의 방식을 사용해 의식의 검열 없이 이미지를 창출하려 했다.
르네 마그리트는 마법의 거울이란 제목의 그림을 그려놓고 거울 속에는 사람의 모습도 방안의 풍경도 아닌 ‘인간의 몸이다’라는 글을 적었다. 처음 그림을 볼 때 변기인가 했다가 제목을 보니 거울인가 했는데, 작가는 인간의 몸이라고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을 배치해서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의도였다면 적중했다. 전시회 포스터의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의 ‘불길한 날씨’이다. 이 그림이 초현실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라서 뽑았다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또 어떤 재미난 일을 벌일까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전시장에 한쪽 벽을 채운 사진에서 달리를 찾아보라고 도슨트가 문제를 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달리는 없었다. 멋진 차림의 신사 숙녀 사이, 화면 중앙에 우주인 복장인지, 잠수복인지 애매한 모습의 한 사람, 심지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 달리가 있다. 그가 그린 그림만큼 독특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초현실 세계에서 빠져나와 경주의 오래된 골목 끝에 자리한 카페에서 진저라떼를 마셨다. 은은한 생강향과 위에 뿌려진 시나몬을 함께 마시니 온몸이 따뜻해졌다.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고 월정교의 야경을 보러 갔다. 비가 하루 종일 서성거렸지만 바람이 없어서 걷기에 좋은 밤이었다. 월정교의 불빛이 들어오고, 아래로 흐르는 물에 비친 월정교가 더 멋진 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에 오리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 잔잔하고 완벽한 하루였다.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