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인터넷 강의를 듣느라 새벽에야 눈을 붙였다. 몸이 찌뿌둥해 좀더 잘까 하다가 일단 일어난다. 두유라도 만들어놓고 눈을 더 붙여볼 수도 있다. 흰콩과 검은콩을 섞어 둔 통에서 계량컵 3개 분량을 담아 살짝 물에 씻어 두유기에 넣는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을 동안에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다. 전원을 켜 두유를 선택하여 누른다. 32분이 지나면 두유가 완성될 것이다. 그동안 다시 침대로 가 몸을 누일까. 생각해 보니 찐달걀이 없다. 냉장고에서 달걀 6개를 꺼내 물에 씻어 달걀찜기에 올려 전원을 켠다. 13분 뒤면 다 익을 것이다. 냉동실에서 통밀빵 한 조각을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는다. 며칠전 만들어 둔 양배추 당근라페와 그릭요거트도 꺼내 식탁 위에 올린다. 그 사이 몸은 그런 대로 괜찮아진다. 30분 뒤 남편을 부른다. 강아지도 남편의 무릎 위에 앞다리를 얹는다.
오후 2시 30분. 범어초등학교. 돌봄교실 인터폰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다.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오신 선생님께 손을 가지런히 배꼽 위에 얹고 고개를 90도로 숙여 공수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나도 선생님께 답례를 하고는 달려오는 아이들을 맞는다. 팔을 크게 벌리고 있으면 손자가 먼저 폭 안긴다. 땀냄새가 짙다. 농구했구나. 응 할머니 오늘은 우리 편이 이겼어. 나도 한 골 넣었어. 우와 잘했네. 그 사이 다가온 손녀의 손엔 과학시간에 만든 뭔가가 들려있다. 할머니 오늘은 냄새 없애는 거 만들었어. 발에 뿌리면 냄새가 없어져. 향기도 나. 아빠에게 주려고 해. 할머니도 뿌려 줄까? 손에도 닿아도 괜찮대. 글리세린을 넣었어. 근데 만들 때 좀 쏟았어. 나만 아니고 다른 애들도 다 조금씩 쏟아서 선생님이 닦아주셨어. 아이들 등의 가방을 빼 든다. 꽤나 무겁다. 이 깊은 겨울까지도 몇 개씩 달려있던 플라타너스나뭇잎이 떨어져 인도에 나뒹군다. 아이들은 제 발보다 더 큰 나뭇잎을 찾아 밟는다. 워석버석 소리를 내면서 바스러진다. 그것도 놀이다. 내가 밟은 나뭇잎이 더 커. 아니야, 내 나뭇잎이 더 크고 소리도 컸어.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을씨년스럽다. 내 생각을 읽었나 손자가 한 마디 한다. 할머니 밤에 나오면 참 아름다워. 우리집에 있는 것보다 크고 더 많이 반짝거리거든.
밤 10시. 또 울리는 알람. 붓글씨 쓰는 시간. 한 장을 다 쓰면 등줄기에 땀이 느껴진다. 몸쓰는 일보다 더 힘든가 보다. 이 루틴을 올해는 지키려 애쓴다.
토요일 아침 10시. 스포츠센터 수영장. 손녀와 매주 같이 다닌 지 석 달째다. 내가 수영 다녀 보니 부자나 모녀가 같이 오는 게 좋아 보여 며느리에게 권유했다. 바쁜 며느리 대신 내가 손녀를 데리고 다닌다. 대충 씻겨 수영복으로 갈아입히면 제 먼저 들어간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레인에서 수영하면서 힐끔힐끔 손녀를 찾아본다. 발차기도 하고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이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가 없다.
우리가 수영장에 있는 시간에 남편은 손자를 데리고 축구교실에 가 있다. 힘들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데 천만의 말씀. 이 즐거움과 고마움을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한다. 애들이 더 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