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태양은 변함이 없는데 연도(年度)가 바뀌었다는 말이다. 갑진년 마지막 날 해넘이를 보려고 기계읍 변두리 시골집으로 갔었다. 마을 앞을 나서면 봉좌산과 운주산이 나란히 서 있는데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이내 봉좌산 허리에 황금빛 태양이 걸린다. 일몰 시간은 5시 20분경, 찬란하게 빛나던 태양이 산 뒤로 숨어버리고 들판은 어둠에 젖는다. 산의 실루엣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냈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저 태양은 14시간 뒤 다시 동해에 떠오르겠지.
한 해의 끝날 자정에 마음을 편히 하고 보신각 타종행사의 TV 화면을 본다. 여느 때 같으면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신나는 공연이 있겠지만 올해는 조용하게 시민 대표 15명이 종방망이로 33번 울릴 뿐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참사로 179명이 사망하여 1월 4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한 탓이다. 연말을 맞아 방콕 여행을 다녀와서는 공항에 내리지도 못하고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린 영혼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전국의 새해맞이 타종행사는 축소되거나 취소되어 새해를 즐기지 못하고 분향소 앞에 묵념하게 되어 축제가 추모의 장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겠지만 여러가지 의혹을 풀어서 다시는 그러한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계엄과 탄핵의 어지러움에 울화통이 터지는데 울고 싶은 심정의 국민은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어김없이 또 새날은 밝았다. 차가운 새벽에 해돋이를 보려고 두껍게 입고 영일대 바닷가로 걸어 나갔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해변으로 이어진 골목을 메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먼동이 튼 바닷가에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고 바닷물이 밀려오는 모래밭에 길게 늘어선 모습 또한 장관이다. 인파를 헤치며 영일대 쪽으로 걸어갔더니 입구는 막아두었고 바리케이드가 길게 쳐져있었다. 광장에는 어느 사찰에서 떡국을 끓여 나누어주고 있기에 한 그릇 받아서 먹고는 일출을 기다리는 인파 사이로 파고드니 영일만 건너 호미반도 위로 해가 솟는다. 어제저녁 봉좌산 뒤로 사라졌던 그 해는 다시 솟아올랐지만 이제 을사년의 해이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위태로운 국가의 안녕과 집안의 평온을 빌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미곶에도 전국에서 온 3만여 명의 인파가 상생의 손 해맞이를 보러왔지만 공식행사는 취소되고 해맞이 공원에 설치한 추모의 벽에 글을 남길 뿐이었다.
새해를 맞아 경북도는 초일류 국가를 위해 ‘멈추지 않는 도전, 희망의 경북 시대’를 신년 화두로 내 걸었고, 포항시는 ‘미래 성장, 도시 활력, 시민 중심, 생활 행복’ 등 4대 시정 목표를 세워 바이오, 수소, 2차전지 등 3개 분야 특화단지 조성과 함께 POEX(포항국제컨벤션센터) 추진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탄핵 정국으로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등 민생 경제의 어려움과 미국 트럼프 취임 후 예상되는 국제정세도 걱정이 크겠지만 ‘매일이 새해 첫날이라고 생각하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빛나는 한 해가 되도록 스스로 응원하며 다독이자. 작년에 못다한 일들을 아쉬워하지 말고 새해엔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마음속의 종을 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