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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군립 도서관

등록일 2024-11-17 18:26 게재일 2024-11-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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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11월 15일 낮 12시 2분 승용차 한 대가 흐릿한 구름장 아래로 청도 화양을 출발한다. 죽음과 마주하는 나이 든 부부의 마지막 여정(旅程)을 영화로 만든 ‘해로(偕老)’(2012)를 중심으로 노년과 죽음에 관한 인문학 강연을 위해 길을 떠난다. 나의 목적지는 화양(華陽)에서 대략 105km 떨어진 의성 군립 도서관이다.

안계(安溪)에 자리한 의성 군립 도서관은 내게 낯설지 않다. 3-4년 전에 인문학 강연을 하러 두어 차례 들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청중들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행태를 보면서 ‘이런 강연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기억이 생생하다.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강연을 아무리 많이 들은들 저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평소와 달리 이번 행장(行狀)에는 기타도 차에 실었다. 훌륭한 솜씨는 아니지만, 나 혼자 혹은 가까운 친지들과 어울려 노래할 정도는 되기에 마음을 낸 것이다. 더욱이 의성 군립 도서관의 실무 담당자가 기타를 가져와 노래하는 것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기로 용기백배했다.

1시간 40분 남짓 걸려 도착한 의성 안계 하늘은 가녀린 햇살을 내비치고 있다. 담당자가 준비해준 악보대(樂譜臺) 위에 노래책을 펼치고 의자에 앉는다. 소월(素月)이 작시한 ‘못 잊어’와 혜은이의 명곡 ‘비가’를 부른다. 오랜만에 부르는 신통치 못한 노래지만, 강연장을 가득 메운 60여 노년의 청중은 주의 깊게 노래를 듣는다.

담당자의 연사 소개 후에 청중을 보노라니 몇 분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리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니 흐뭇한 마음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죽음이나 죽음과 연관된 말이나 생각, 혹은 대화 자체를 꺼리는 수가 많다. 하지만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두렵다고 외면한다 해서 죽음이 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강연을 시작한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강연 도중에 화장실을 오가고, 옆 사람과 쉬지 않고 떠들고, 심지어 큰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던 그들이 아연 조용한 것이다. 간간이 전화기가 울리고, 옆 사람과 떠들고, 강연장에 늦게 나타난 사람도 있긴 했으나, 예전과 현저히 대비되는 장면이 펼쳐진 게다.

오후 2시에 시작한 강연은 3시에 10분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4시 무렵 끝났다. 도서관장의 요청에 따라 연사를 향한 박수가 이어진다. 이윽고 청중이 모두 빠져나간 다음 관장과 잠시 환담한다. 그이도 청중의 태도 변화를 물어온다.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하는 관장의 물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하고 내가 묻는다.

지난 4-5년 의성군에서 인문학 강연을 계속 진행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인문학은 개인의 독서와 사유 그리고 글쓰기가 동반돼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인문학 강연 역시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가 이번 의성 군립 도서관 강연에서 얻은 망외(望外)의 소득이다. 붓다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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