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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살에 연고 없는 포항에서 무용학원 개원

등록일 2024-09-25 20:04 게재일 2024-09-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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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달을 보며 함께 춤을 추고 싶은 무용가  김동은 <1> 무용 입문과 포항에 오기까지

여고 시절의 무용 선생님은 수업 전에 덧버선 검사를 했고, 꼭 수돗가에서 발을 닦고 들어오게 할 정도로 엄격했다. 당시 선생님의 반듯한 용모와 도도한 기품은 여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김동은 무용가와의 첫 통화 때 바짝 긴장했다. 내 염려를 알아차렸는지, 본인도 이런 대담은 생소하다며 서로 마음 편하게 만나자고 했다. 김동은 무용가는 지난 2월 23일 사단법인 한국예총 포항지회장 경선에서 당선된 바 있다. 동빈내항에 있는 포항예총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어릴때부터 무대에 서는 게 좋았습니다. 경북예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했어요. 2남 1녀 맏딸을 기생으로 만들 수 없다며 참전용사이신 아버지는 심하게 반대했지만 어머니의 숨은 뒷바라지 덕분에 무용에 매진했습니다. 고교시절 대구 무용학원서 만난 백년욱 원장님을 롤모델 삼아 무용학원 원장의 꿈을 키우다 동지여상 무용교사인 친구 따라 포항에 정착했지요. 1978년 당시에 학원 인가 받는데만 6개월이 걸렸어요. 현재 중앙아트홀이 있는 시공관서 공연 할때는 연극인들과 미술가들이 조명과 무대를 꾸며줬습니다. 특히 신상률 포항예총 회장님·김삼일 은하 극단 대표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죠.

박금슬 선생 추모 공연. (1986)
박금슬 선생 추모 공연. (1986)

전은주(이하 전) : 지난 3월에 한국예총 포항지회장에 취임하셨죠. 그 후로 바쁜 나날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김동은(이하 김) : 네, 회장 취임 후 한동안은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바빴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열심히 공부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전 : 포항예총 역대 회장 중 첫 여성 회장이자 첫 무용협회장 출신입니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김 : 1978년에 포항에 왔습니다. 그전에 포항에 무용학원 한 군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요. 1970년대 이후 포항에서 학원 무용 선생으로는 내가 처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좀 어렸지요. 어리다고 하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포항에 와서 교육청에 무용학원 인가를 받으러 가니까 내주지 않더군요. 춤이라면 사교춤으로만 생각할 때여서 무용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어요. 학원 장소를 마련해놓고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인가를 받았지요. 인가 번호를 지금도 기억하는데 13호입니다. 그때 포항 시내에 공연장이 딱 하나 있었는데 시공관이었어요. 지금은 중앙아트홀이 있는 자리지요. 그곳에서 공연할 때 연극인들이 조명을 도와주고 미술가들이 무대를 꾸며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신상률 포항예총 회장님, 김삼일 은하 극단 대표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언젠가 때가 되면 신세를 갚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포항예총 회장이 되고 보니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군요.

전 : 지금도 무용 하면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그 시절에 무용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 초등학교 때 학예회가 열리면 주인공으로 뽑혀 공연을 했었지요.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무대에 서는 게 좋았어요. 중학교에 무용반이 있어서 무용을 했고 경북예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경북예고 5회 졸업생입니다.

전 : 학창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김 : 선생님들이 나더러 “너, 아양 초등학교 졸업했냐”며 웃으시곤 했어요. 내가 아양(애교)을 많이 떨어서 그랬답니다. 귀여움을 많이 받았지요. 친구들한테는 잔소리를 많이 해서 시어머니라는 얘기를 들었고요. 피부가 곱고 뽀얘서 규율 선생님한테 볼 검사를 자주 받았지요. 가제를 손가락에 말고 볼을 싹 닦아보곤 하셨어요. 손톱도 유난히 반짝여서 무색 매니큐어를 발랐다고 혼나기도 했습니다.

전 : 어여쁜 학생이셨군요. 혹시 롤모델이 있었나요.

김 : 있었지요. 고등학교 다닐 때 대구에 무용학원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백년욱 원장님이 운영하는 학원에 가게 되었는데, 원장님의 첫인상이 근엄하면서도 그렇게 우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가 겨울이라서 한복 치마저고리 위에 마고자까지 갖춰 입고 올림머리를 하고 계셨지요. 그때 목표가 딱 생겼습니다. 무용학원 원장이 되어야겠다고.

전 : 무용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 : 나는 2남 1녀의 맏딸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을 기생으로 만들 수 없다며 극심하게 반대했어요. 그래서일까요? 아버지는 생전에 한 번도 제 공연에 오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섭섭하지는 않았어요. 무용하는 걸 묵인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요. 내가 무용에 온 힘을 쏟는 걸 보고 나중에는 참 열심히 한다고 인정해주시더군요.

전 : 그 시절에는 아버지가 반대하면 무용뿐만 아니라 뭐라도 하기 힘든 시절이었을 것 같습니다.

김 :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뒤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머니가 너 때문에 내가 주머니를 두 개 차야 한다고 하셨지요. 아버지 눈치 보느라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 해준다며 늘 미안해하셨어요. 그때 어머니가 힘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을 겁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전 :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김 : 군인이었습니다. 육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셨지요.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있는 참전용사 비문에 아버지 존함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고집이 엄청나게 셌어요. 국가유공자 훈장을 받으러 오라고 했을 때 “그깟 종이 쪼가리는 받아서 뭐 하노” 하시면서 안 가셨답니다. 미군 부대에서도 표창장을 준다고 몇 번이나 연락이 왔는데 끝까지 안 가셨고요. 그래서 우리 형제들이 공부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 국가유공자 가족으로 아무 혜택도 못 받았어요. 어머니께서 그 훈장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안타까워하셨지요. 세월이 흘러 막냇동생이 국방부에 의뢰했더니 아직 훈장이 있으니 찾아가라고 했답니다. 덕분에 아버지는 영천 호국원에 영면하셨지요.

전 : 국가유공자인데 아무 혜택도 못 받으셨군요.

김 : 연금은 물론이고 혜택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강사 지원서에도 국가유공자 자녀라 쓰면 우선권이 주어진다는데…. 지난 6월 25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국전쟁 74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군인들이 깃발을 들고 무대에 입장할 때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전 : 포항에 오실 때 연고는 있었는지요.

김 : 없었습니다.

전 : 연고도 없는 포항에 가서 무용학원을 열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김 : 아버지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저를 포항으로 시집보냈다고 생각하시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듯합니다.

전 : 포항에 온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김 : 친구가 동지여상 무용 교사였어요. 그 친구를 의지해 포항으로 왔는데 정작 그 친구는 결혼 후 포항을 떠났습니다. 궁극적인 이유는 대구에서 무용학원을 열면 스승이나 선배들의 영역과 겹치게 되지요. 그걸 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 : 어쨌든 용기가 대단했군요.

김 : 지금 생각해도 무모했다고 할 수밖에 없지요. 나이 어리다고 무시할까 봐 허리까지 긴 머리카락을 둘둘 말아 틀어 올려 비녀 같은 걸 꽂고 다녔습니다. 나이 들어 보이려고요. 지금은 빈말이라도 젊어 보인다고 하면 기분 좋은데…. 그저 웃음만 납니다.

전 : 그 당시 포항 분위기는 어땠나요.

김 : 죽도동에 자리를 잡았는데 슬래브 지붕의 단층주택뿐이었어요. 밤이면 시내 전체가 조용했고 제철소의 용광로에서 뿜어내는 시뻘건 빛과 용광로 돌아가는 소리만 크게 들렸지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습 니다. 대담·정리 : 전은주(동화작가)

사진 : 김훈(작가)

김동은은…

1953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왜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북예고와 광주대를 졸업하고, ‘월월이청청에 관한 연구’로 중앙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제2회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폐막공연에서 ‘월월이청청’을 선보이는 등 ‘월월이청청’의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78년 포항에서 무용학원을 개원한 후 지역 무용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썼다. 포항무용협회 초대 회장, 경북무용협회장 등을 지냈으며, 제14회 금복문화대상, 제44회 경북도문화상 은상 등을 받았다. ‘충비 단량, 대를 잇다’ 등 지역에 기반한 20여 편의 창작 한국무용을 발표했다. 2024년 3월 제14대 포항예총 회장에 취임했으며, (사)한국미래예술문화진흥원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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