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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가사 세 자매

등록일 2024-09-18 18:19 게재일 2024-09-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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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역시나 내방가사가 인연이 된 또 하나의 모임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내방가사는 평생이다시피 내 인생을 바쳐온 연구 과제였고 성취였지만 소중하고 귀한 인간관계의 훌륭한 매개이기도 한 셈이다.

작년 봄, 대구한글서예협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중하고도 예의바른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경상도 억양도 아니었다. 매년 대구한글서예협회전을 개최하는데, 2023년의 주제를 내방가사로 하고 싶다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좋은 기획에 귀가 솔깃했다. 당장 만나 얘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곁에 있던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한글과 관련 있으니 함께 만나자고 했다. 집 부근의 카페에서 만난 최민경 회장님은 단정한 올림머리에 기품있게 성장을 해 오셨다.

‘합쇼체’의 극존대어를 일상으로 쓰고, 예의가 몸에 밴 천상 서예인이셨다. 2022년 세계기록유산 아태 목록에 등재된 내방가사가 여성의 한글문학이니 한글서예전에 마침맞춤이라는 제안은 훌륭했다.

경북도한글문화콘텐츠민간위원장이었던 남편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한국국학진흥원에 연락해서 가능한 지원을 통해 전시를 유치하라고 권했다. 남편의 권유를 받아들인 한국국학진흥원은 한글날을 기념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내방가사 작품을 선별하여 한글 서예로 옮겨 써 전시하는 걸로 정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국학진흥원 훈민정음 사업단의 담당연구원 박혜민 박사를 만났다. 나직나직한 말투에 다소곳한 그이는 아이디어는 풍부하고 일에는 빈틈이 없는 학자였다. 셋이 처음 만났지만 일에 관한 한 어찌 그리 손발이 척척 맞는지, 신기했다.

서예 작품 제작을 담당하는 최 회장님, 원본을 제공하고, 행정적 지원을 책임진 박 연구원의 역할에 보태 나는 약간의 자문을 하는 정도였다. 회원들과 함께 수차례 회의했고 그때마다 만난 우리 셋은 자매같이 정이 들었다. 대구한글서예협회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경북대 도서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릴레이특강도 했다. 경북도청에서 한 한글날 기념 전시는 세상에 둘도 없이 멋지고 웅장하기까지 했다.

모든 행사는 끝났지만 우리의 만남은 끝낼 수가 없었다. 나는 최 회장님께 서예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은퇴 후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서예였다. 박 연구원은 최 회장님의 권유로 천주교 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았다. 또한 최 회장님이 발굴 소개한 내방가사 작품으로 훌륭한 논문을 써서 발표했다.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자 멘토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작년 말 송년을 겸한 자리에서 우리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잇자고 합의하고 우리 서로 자매가 되면 어떻겠냐고 내가 제안했다. 그렇게 ‘내방가사 세 자매’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린 서로 언니 동생이라 호칭하지 못한다. 처음 만나 부른 사회적 호칭이 워낙 견고했던 탓도 있지만, 셋의 관계가 다시 스승의 역할로 얽힌 때문이다.

하긴 예전엔 가족끼리도 사회적 역할에 따른 호명을 한 예가 있으니 뭐, 어떠랴. 호칭이야 어떻든 그리우면 이따끔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자매애 그 이상 아니겠는가. 나와 최 회장님은 매주 만나고, 그때마다 박 연구원과도 연락하고 만날 날을 기약한다. 어쨌든 이 좋은 인연을 이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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