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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자

등록일 2024-09-04 19:22 게재일 2024-09-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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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힘 빼시고, 힘 빼시고” 매일 오후 8시부터 50분간 하루 10번 이상은 듣는 말이다. 버킷리스트에 있어 작심하고 3월초부터 시작한 수영이었다. 두어 달 쉬고 7월 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까지 성별 나이 구분 없이 열대여섯 명 남짓 한 그룹이 되어 하는 수업이다.

강사님은 모든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깍듯이 존댓말을 쓴다.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어깨의 힘을 빼라는 말이다. 자꾸 몸이 가라앉는 게 어깨에 힘을 주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남들은 잘도 떠서 레인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단숨에 가는데, 난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가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 때문이란다. 내 딴엔 힘을 뺀 것 같은데 아닌가 보다. 작심하고 어깨의 힘을 빼면 잠시 둥둥 뜬 듯하지만 곧 다시 가라앉으며 물을 먹고 콧속이 찡해지고 따가워진다.

원래 앞자리 썩 나서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 수업에선 앞자리는 커녕 자진하여 맨 뒷자리로 가 꼴찌를 자처하며 다른 수강생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처음 수강신청을 할 땐 예전에 잠깐 했던 수영실력을 믿었다. 몸이 기억하리라. 그런데 영 아니었다.

30대에 잠시 배웠던 수영을 몸은 절대 기억하지 못했다. 10대 때 바닷가에 살며 배운 수영도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자진유급해서 초급반을 두 달이나 했는데도 수영 실력은 영 제자리인 것이 바로 힘빼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었다. 늙어 힘이 없고, 근육이 없고, 숨가쁨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몇 주 전의 파리 올림픽 중계를 볼 때마다 종종 들리는 말도 ‘힘을 빼야 해요”였다.

양궁선수의 화살이 잠시 과녁의 가운데서 멀어지면, 사격선수의 총알이 중앙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직벽을 타고 오르던 클라이밍 선수가 맥없이 떨어지면 해설위원은 영락없이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고 했다.

양궁선수가 정확한 겨냥을 하려면 어깨의 힘을 빼야 한다는데, 저 무거운 양궁을 든 어깨의 힘을 어찌 빼라는 건지…. 선수들도 저럴진대 수영초보자인 내가 물속에서 어깨 힘이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지 않나 위안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힘을 빼라는 건, 마음의 무게, 마음의 힘을 빼라는 것임을. 정작 나는 물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까봐 긴장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물에 절대 빠지지 않으니 믿으라고 했지만 난 몇 번 빠졌고, 허우적거렸고, 물을 먹었다.

그러니 힘을 빼라는 말은 바로 몸의 긴장을 풀라는 말인 동시에 마음 속 긴장도 절대 갖지 말고 즐겨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져라. 의심하지 말고 어깨의 힘을 빼면 가라앉지 않을 걸 믿어라. 믿어라. 그런 뜻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힘을 빼야 할 것은 어깨만이 아니다. 내 삶과 살림에서도 무게와 힘을 빼야 한다. 목과 어깨에 힘을 주는 힘자랑은 쓸모없는 허세요, 허망한 욕심이요,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다. 내 마음의 힘을 빼 더 낮은 곳에서 겸손해지자. 살림에서도 힘을 빼 최소함의 행복을 누리자.

그러나 지금은 어깨의 힘을 빼자. 그리하여 물 위에 둥둥 떠서 수영실력을 늘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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