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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자궁

등록일 2024-08-28 18:20 게재일 2024-08-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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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귀자 수필가
피귀자 수필가

칼 맛을 보더니 더 독해진 걸까. 날 선 칼을 튕기며 길을 내주지 않는 단 호박. 남반구의 강렬한 햇빛이 키운 완강한 근육을 진작부터 알아봤지만 이리 돌 같을 줄이야. 칼의 길을 더 이상 용납 않는 호박과의 씨름이 낭패스러웠다.

겉가죽이 검푸른 단 호박 한 덩이를 샀다. 작은 크기에 비해 묵직한 뉴질랜드산 호박이다. 깨끗한 공기와 끝없이 푸른 들판을 머금은 환경은 직접 보기도 했지만 숨긴 속내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 먼 길을 돌았어도 상처 하나 없이 암팡지게 내려앉은 모습이 유장하기까지 하다.

말쑥하게 목욕시키고 식초 단장까지 마친 후 자르려고 칼을 넣었다. 처음부터 이가 약한 세라믹 칼을 들고 설친 게 실수였다. 칼끝을 날리고서야 겨우 빼낸 후 무쇠 칼로 바꾸었다. 쇠 칼날을 물고도 완강하게 버티는 호박을 도마에 대고 탕탕 치며 이리 돌리고 저리 흔들다 보니 겨우 한쪽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철옹성 같은 짙푸른 초록의 속이 샛노랗다 못해 주황빛이다. 드러난 속살에 옛 추억이 소환된다. 낡은 창고 지붕이 위태로울 정도로 큼지막하게 자리 잡았던, 늙은 호박 속과 닮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칼 아래 누르스름하게 골진 단단한 껍질이 벗겨지고 쫙 갈라지던 거대한 호박 속. 처음으로 자세히 본 호박 속은 어린 마음에 금화 가득한 흥부의 박 속처럼 신기했다. 늙은 호박은 겉도 누런 색깔로 골이 깊게 패이고 높이보다 옆으로 넓게 자리 잡은 모습과 달리 단 호박은 작고 껍질이 검푸른 탓일까 늙은 호박 속보다 더욱 붉게 보이니.

환한 빛 내뿜는 단 호박 구멍 속에 손을 넣었다.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호박씨를 손가락에 힘을 주어 긁어내자, 미끌미끌한 실끈에 달린 호박씨들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근육을 키운 자양분 주황 물이 끈끈한 피 마냥 손을 적신다.

오글오글 모여 있는 호박씨들이 곧 깨어날 개구리알 같다. 코끝에서 싱싱한 야생의 기운을 내뿜는 입김이 달착지근하다. 달달한 향이 솔솔 흘러나온다. 잘 익은 과일의 농익은 달콤함과 제철 과일의 싱싱함까지 품은 호박 향이 저절로 가을 들판을 달리게 한다.

씨가 빠져나가자 움푹한 구덩이가 드러났다. 입김 달달한 경이로운 동굴이 옹골차다. 완강한 근육 속 고백, 단단한 몸이 만든 샛노란 자궁이다. 몸 전체가 자궁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으니 몸의 크기에 비한다면 아마 가장 큰 자궁이리라. 산도를 따라 피어난 저토록 야무진 둥근 방, 눈부시도록 환한 속은 계절을 삭힌 여백일까. 한 발 한 발 넓혀나가느라 운 울음의 깊이일까.

반백년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자궁을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수술대 위에서 의사의 시술로 어쩔 수 없이 빈 궁마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헛꽃 물혹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생산의 소임을 다했다지만 여성으로서의 상징 같은 자궁을 상실한다는 의미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여성성을 도려내는 듯 상실감도 밀려왔지만 겉으론 쿨 한 척 이 또한 가볍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알알이 영근 씨를 가득 품은 호박 속을 보며 되살아났다.

그 일로 수혈을 많이 한 까닭인지 수족냉증이 와서 겨울마다 오랫동안 고생했던 일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원래 피가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수혈 양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있던 피가 텃세를 한 탓일까. 들어온 피와의 화합이 그리 어려웠던 것인지. 아무튼 찬물에 넣으면 손과 발이 빨개지고 따가울 정도여서 괴로웠는데 세월이 약이었다.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듯, 모진 비바람과 땡볕과 가뭄을 이겨내고 익어서 제 소임을 다하는 호박 앞에서, 지금 이 시점이 내 인생의 어디쯤인가도 다시 가늠해 보게 된다. 언젠가 해는 서산으로 넘어갈 것이고, 나도 저물어 갈 것이니까. 지금은 품을 자궁이 없는 나, 저 달달한 자궁의 농익은 문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저리 붉게 활활 토하는 저 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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