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은 지방의회, 이대로 괜찮나<br/><2>해법은 없나… 정당공천제 폐지·교섭단체 조례제정·지방의회법 제정
‘의회 없는 자치 없고 자치 없는 민주 없다’는 말이 있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나라에 민주주의란 무의미하단 뜻이다. 하지만 최근 시민들 사이에서는 ‘지방의회 무용론’이 대세다. 포항시의회의 경우, 원구성에서 파행과 갈등을 거듭해 시민들의 우려가 더욱 심화했다.
이번 제9대 후반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평소에도 의회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뚜렷한 정치철학이나 기조 없이 중앙 정치의 논리와 의석수에 따라 움직인 결과물이다. 뿐만이 아니다. 의원들이 의회 활동 중 일으키는 물의도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민생과 관련된 시급한 안건들도 별다른 진전 없이 대부분 묶여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방의회가 다시 제 기능을 하도록 혁신할 방법은 없는지, 여러 각도에서 모색해봤다.
일부 대상 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로 우수인력의 지방의회 진입 촉진 시켜야
정당·원내 단체 의원 중심으로 정파 간 교섭 창구 역할을 할 교섭단체 구성을
지방자치를 실현할 법률 만들어 다양한 형태의 의회·단체장 관계 변화 필요도
◇정당공천제 폐지
지방의원 정당공천제는 광역의회는 1991년부터, 기초의회는 2006년부터 도입해 지속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지방선거에 정당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지방자치도 민주정치의 일환으로서 정당 참여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의사 결정에 대한 책임소재가 명확해진다. 현실적으로도 지방선거에서 정당 참여는 이뤄져 왔다.
하지만 정당공천제도로 인해 지방선거의 중앙 정치 예속화가 점점 심화됐다는 부정적 의견도 커지고 있다. 또 지방선거가 지역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중간평가로 전환, 정당의 지역패권주의가 재현되고 있다. 포항시의회 제9대 후반기 원구성에서도 국민의힘 중앙당의 공문에 따라 의장단 선거 전 의원총회를 열고 내정자를 선임했다. 국민의힘 의원이 다수라 내정자는 그대로 본회의 선거에서 당선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당공천을 받기 위해 중앙당이나 지역 국회의원에게 일종의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단체장이나 의원 출마자들이 지역 국회의원에게 고액 후원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또 각 정당이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을 줄이고 ‘내 사람 끼워 넣기’식의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당공천제도는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 강조돼 지방자치를 역행하는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중앙당도 이 같은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공천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자 여야 정치권은 지난 4월 총선에서 향후 치러질 지방선거에 시민 투표로 결정되는 ‘상향식 공천’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 나왔지만 이것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우수인력의 지방의회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때 일부 대상에 대해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초의원의 경우 정당공천제를 없애고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를 거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 포항시의회 한 의원은 “기존에 논의되던 국민경선제의 방식을 보다 체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정당공천을 완전히 배제하는 점진적인 대응책 마련이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섭단체 조례 제정
포항시의회 김성조(개혁신당, 장성동) 의원은 지난달 31일 제317회 포항시의회 임시회 전 5분 발언에서 “‘포항시의회 교섭단체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광역·기초의회에서 산발적으로 ‘교섭단체 조례’가 제정되고 있다. 25일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243개 기초·광역지방자치단체 중에서 교섭단체를 구성·운영하는 곳은 91개 지자체다. 지난해 3월 개정된 ‘지방자치법’ 63조의2에는 ‘조례로 정하는 수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국회에서와 같이 교섭단체를 지방의회에서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섭단체는 의회 의사 진행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의장과 협의하기 위해 일정한 수 이상의 의원들로 구성된 의원 단체를 말한다. 보통 의회에서 일정한 정당 또는 원내 단체에 소속한 의원들의 의사를 사전에 통합·조정해 정파 간 교섭의 창구역할을 함으로써 의회의 의사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국회에선 20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기초의회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를 보면 많게는 9명에서 적게는 3명만 있어도 구성할 수 있다. 소수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해 원내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지방의회의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국회에서의 각 당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의회 정책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방의회 교섭단체와 그 대표의원의 권한은 의회 의원 구성 협의, 소속 의원의 상임위 배정,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등 직위에 관한 인선, 위원회 위원 선임과 개선의 요청과 협의, 의회 일정과 의사 진행순서 협의, 대집행부 질문의원 수와 질문순서, 긴급 현안질문 관련 협의, 정례회 중 대표연설 등과 같이 막중하다. 즉 소속 정당 의원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의회운영에 있어 상당한 결정권을 가지며 정당 간 교류에도 핵심적 역할을 한다.
포항시의회는 교섭단체 구성·운영에 관한 조례가 아직 없다. 지역 사회에서는 정당이나 원내 단체에 속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파 간 교섭 창구 역할을 할 교섭단체가 구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포항시의회 더불어민주당 김상민 원내대표는 “현재 포항시의회는 7명의 소수당 의원을 배제함으로써 포항시민 약 5분의 1을 배제하고 있다”며 “교섭단체를 통해 정당 간 견제와 협력으로 균형을 이뤄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더 보장하고, 포항시의회 민주주의 또한 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회법 제정
지방의회는 지방정부를 통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지방의회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5일 현재 지방의회(광역의회 17개·기초의회 226개) 의장 협의체인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와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장협의회는 지방의회법 제정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지방의회법 제정은 지방헌법을 만들어서 각 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인정하고 각자의 권한 속에 진행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정책지원관 정상화, 수석전문위원실 증설 등 숙원 과제를 지방의회에 관한 독립법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방의회와 관련한 법률 조항은 ‘지방자치법’에 포함돼 있는데 △지방자치 분권에 따른 지방의원 역할 확대 △의원 2인당 1명 배정방식의 정책지원관 부족 문제 △특례시의회 출범 등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을 법 조항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의 조직·예산권을 규정하지 않아 의회사무처 운영 등에 있어 차질을 빚고 있다.
문제는 전국 243개에 달하는 지방의회 규모와 기능에 비해 지방의회법 등 독립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낮다는 것. 때문에 국회 등 중앙 정치에서 지방의회법은 주요 법안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법은 지난 2018년 전현희(더불어민주당, 강남을) 국회의원이 최초 발의했지만 계류,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4건의 지방의회법이 상정됐지만 모두 불발됐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지방시대위원회’도 지난해 7월 10일 출범, 약 1년 넘게 지역 균형발전 정책, 지방분권 과제 등을 총괄해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방의회법을 주요 안건으로 삼지 않고 있다.
지방의회법은 일선 지방의회에서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후반기 시도의회의장협의회와 시군자치구의장협의회 활동이 본격화되면 전국 지방의회 대표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 14일 열린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정기회’에서도 지방의회법 제정 촉구를 논의했다. 또 각 당 대표들에게도 지방의회법 필요성을 전달해 국회에서 공론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구권 대학의 한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기관대립형 정부형태지만 단체장 권한이 우위에 있다”며 “지방의회법 제정으로 지방자치를 실현할 법률을 만들어 의회와 단체장의 관계가 각 지역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은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