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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시가 뭐꼬?

등록일 2024-07-07 20:12 게재일 2024-07-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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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시인
이희정시인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헛둥지둥 왔는데

시를 쓰라 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

고구마 밭에서

밭을 매다가 너무 더워서

집에 왔다

중복이라서 닭 한 마리

사다가 영감하고

꽈서 먹고

즐거웁게

한글학교에 오니

학생들이 많이 왔다

더운 줄도 모르고 한글수업을 하였다

―‘시가 뭐고?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삶창, 2015)

그렇다, 시금치씨 배추씨도 아닌 시가 뭐냐고? 시집 ‘시가 뭐고?’는 ‘시’가 아닌 ‘씨’를 쓰는 시인들이 경작한 시집이다. 이 시는 경북 칠곡군에 사는 ‘할매’들이 문해(文解)교육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한글로 손수 쓴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의 표제작이다.

이 시집의 묘미는 살아있는 입말(口語)의 경지를 맛보는 것에 있다. 그 어떤 꾸밈도 분장도 없는 소화자 할머니 외 88명의 할매들은 대부분 ‘생애 처음’ 시를 써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들의 조합으로 시를 읽어 보면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틀리고 죄다 경상도 사투리다. 기획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 할매들은 평생을 ‘목소리에 의지하는(verbomotor)’ 문화, 구술성(orality)에 의존한 삶을 살아왔으며, 말을 통해 이해하고, 관계 맺고, 소통 해온 세계에 대한 순한 그리움과 전망이 생애 처음 문자로 새겨 놓았다는 말이 실감으로 온다.

이것이 시란 말인가. 의문을 품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은 뒤, 한 행이 그대로 한 연이 된 그 줄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동공이 습해온다. 우리의 눈과 가슴에 새겨진 그 사투리가 대책 없이 아름다워서 혹은 진저리 치게 삶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에. 사실 사투리는 비유나 운율 등의 시적 요소의 측면에서 볼 때 근친성을 갖기도 한다. 국어학자 이상규가 사투리(방언)를 일러 ‘오래된 역사의 주름’이라고 표현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이 시들에서 사투리는 길고 질퍽한 할매들의 생활 한가운데서 터져 나온 육성이기에. 그것은 모든 관념이 지배하는 절제와 성찰을 넘어서는 우리 몸 전체에 박혀 즉각적으로 생생하게 흡수되고 이해되는 물과 같다. 물에도 밀도가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를 물의 밀도를 재어보면 필경 가장 촘촘한 온도가 될 것이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은 수심이 있어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아가미가 호흡하는 삶의 적소로서 말이다.

이 세계는 낡은 것들로 가득하다. 두 번째 시편 ‘여름날’에는 즐거운 학교가 있고, 학생이 있어 중복 중에도 “더운 줄도 모르고” 배우는 한글이 있다.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칠곡 할매들이 쓴 배움 시편들은 노년기에 경험하는 역할 상실을 극복하려는 학습의 염이 내연한다. 농촌 지역인 칠곡 할매들이 배우면서 느끼는 존재감은 도시에 사는 노년에 비해 적어도 고독할지언정 고립되지 않음을 “학생들이 많이 왔다”라는 시어를 통해 드러난다.

같은 처지의 ‘곁’이 있어 인기척을 느끼며 사는 삶이란 또 얼마나 정겨운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낡은 것은 경시하기 십상인 세계이기에 시집이 환기하는 정서는 소소하지만 사소하지 않다. 그들은 문해 학교에서 글자를 넘어 키오스크를 터치해 햄버거를 주문할 수도 있고, 말로는 전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글로 맺힌 한(恨)을 풀어내기도 한다.

삶은 언제나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올해도 대구·경북 문해교육 현장에서 공모한 첩첩의 시편들을 알현하며 시인들에게 묻는다.

“인문학, 그기 뭐꼬? 우리가 사는 모습이 인문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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