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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성찰, 반성, 그리고 혁신

등록일 2024-05-20 18:23 게재일 2024-05-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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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이 길을 잃었다. 총선 3연패에도 성찰과 반성에 인색하다. 중환자가 수술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진통제만 먹고 있다. 집권당이 되자 변화에 둔감하고 민심도 모른다. 이대로 가면 다음 지선과 대선도 필패다. 보수의 사활은 민심에 부응하여 혁신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구원 투수로 나선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패인으로 외연확장에 따른 내부 결속력 약화를 지적하면서 “보수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중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의 진단이 거의 돌팔이 수준이다. 참패의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고, 비대위원 7명 중 6명을 친윤으로 임명했다. 비상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이처럼 안이하니 미래가 암담하다.

국민의힘은 죽어야 산다. 민심을 받들어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환골탈태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혁신 보수’로 거듭나는 일이다. 변화된 시대에 변하지 않는 ‘수구 보수’는 생존할 수 없다. 보수는 위기 때마다 가면을 쓰고 변신하는 흉내만 내다가 오히려 더 큰 화를 자초했다. 이번에도 중도 확장에 실패한 것은 ‘혁신의 가면’은 썼지만 ‘혁신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민심에 민감한 ‘열린 보수’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성공한 지구적 보수는 ‘실용’과 ‘통합’을 중시한 ‘열린 보수’인데 ‘닫힌 보수’를 고집했으니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의 가치는 개인의 자유를 배려하는 동시에 공동체를 위한 통합의 구현에 있다. 약자의 좌절과 분노를 헤아리고 그들과 동행할 수 있는 따듯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나아가 수직적 당·정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당이 대통령의 시녀가 되면 민심과 유리된다. 물론 대통령이 당을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아야겠지만, 당도 ‘윤심’만 살피는 예스맨(yes man)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는 무기력한 여당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대통령의 부당한 요구에는 분명히 ‘노(no)’라고 거부할 수 있어야 유능한 정당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민의힘은 ‘영남당’과 ‘고령당’의 한계를 벗어나는 혁신이 시급하다. 반공과 산업화 신화에 안주해서 지지층이 노령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심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수포당(수도권을 포기한 정당), 4포당(40대를 포기한 정당)이 되었다. 영국 보수당은 디즈레일리(B. Disraeli)의 과감한 정당개혁, 처칠(W. Churchill)의 ‘젊은 보수’와 같은 혁신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보수가 더욱 젊어지고 영남을 벗어날 때 비로소 떠난 민심이 돌아올 수 있다.

보수는 수구(守舊)가 아니다. 고루한 이념에서 벗어나 미래를 개척하는 실용성 있는 나침판이 되어야 한다. 권위는 없으면서 권위주의를 고집하는 ‘꼰대당’은 시대착오다. 보수의 생명력은 실용적 변화와 혁신에 있다. 암환자가 진통제 처방으로 회생될 수는 없다. 중병에 걸려 있는 보수가 살길은 오직 처절한 반성을 통한 과감한 혁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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