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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헌책방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등록일 2024-04-30 19:36 게재일 2024-05-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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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쿠랑은 ‘한국서지’에서 3821종의 한국 도서를 총 9부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책에 담긴 의미나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 한국의 책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야말로 한국의 서책 문화가 빛나고 있던 한 시대의 중요한 기록이다.

1890년 주한프랑스공사관에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1865~1935)은 한국에서 나온 고서들의 방대한 목록을 모은 ‘한국서지(韓國書誌)’를 1894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해 1901년까지 총 4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젊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책을 사랑하는 나라였다. 그는 자신이 모은 한국의 책에 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한국 책에 대한 애정 깊은 목록을 완성했다.

쿠랑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보고 들었던 한국의 문화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19세기 말 한국 한성에 있던 서점의 풍경에 대해 귀중한 기록을 남겨두었다. 당시 한성의 서점들은 종각과 남대문 사이에 모여 있었는데, 쿠랑은 아마도 고제홍이라는 사람이 열고 있던 고제홍서사라는 서점에 방문해서 그가 책을 전시하고, 책을 파는 모습에 대해 꽤 상세한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이 고제홍의 뒤를 이은 아들 고유상은 이 서점을 ‘회동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만이 아니라 출판까지 겸하면서 이른바 개화기 서적과 출판문화를 이끌었다. 온갖 새로운 지식이 책으로 엮여 소개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기념비적인 출판사도 시작은 양반집에서 흘러나온 경서의 신판이나 고서를 다루던 서점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청계천에, 동대문 평화시장에, 부산 보수동 골목에 모여 있던 고서점들을 물론이고, 거리마다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던 헌책방들은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간다. 이는 서적과 출판이라는 매체를 통해 꽃피웠던 한 시대의 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굳이 헌책방에 들르는 것은 내가 정확하게 찾는 책을 찾으려는 목적이 아니다. 헌책방에는 내가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곳에는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 있다.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책의 존재를 깨닫고 새로운 자극을 받고 오는 곳. 그곳이 바로 고서점이다. 마치 몰랐던 사람의 몰랐던 면모를 알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어, 도움이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책을 잔뜩 사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 헌책방을 방문하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지식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이라는 측면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내가 원하는 지식의 내용을 원하는 만큼의 크기와 분량으로 적절한 시기에 제공받기를 바란다. 마치 우리 모두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렇게 필요한 지식 외의 새로운 변수가 될 무엇인가와의 우발적인 만남을 꺼린다. 확실히 먼지가 가득 쌓여 있는 헌책방의 서가를 하나하나 뒤져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것은 내가 원하는 지식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책을 찾아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다.

책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처럼 가게 바깥으로 채 정리되지 못한 책들이 빠져 나와 있기 일쑤였던 헌책방들도 거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많았던 헌책방들의 책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나의 문화가 끝나고 또 다른 문화가 시작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일요일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헌책방에 들러 우연히 예상에도 없던 책들을 만나 잔뜩 사 들고 와서 뿌듯함만큼은 그냥 내버리기는 아쉬운 것이다. 오늘은 큰 마음을 먹고 동네에 아직 남아 있는 헌책방을 좀 둘러보고 싶다.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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