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종사자들에게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는 것처럼 공연 예술인들에게도 바쁜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다. 우선 1월부터 3월까지 공연계는 꽁꽁 얼어붙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씨가 춥기도 하거니와 지자체와 기업, 재단 등 공연을 기획하는 곳들의 예산이 확정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3개월간의 한가하고도 궁핍한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1월부터 3월까지 공연 예술인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봄과 여름을 겨냥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국가 지원 사업에 응모하기 위한 지원서와 각종 기획서, 제안서 등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한 해 동안 경제적 어려움 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힘든 해를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지원사업의 응모나 제안들이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창작 자체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물론, 공연비를 지원하는 사업, 예술인의 다양한 활동을 주선하는 사업 등의 경쟁률은 매우 치열하다.
그래서 공연 예술인들은 여러 곳에 응모와 제안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서류들을 작성하며 비수기를 난다. 그리고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그 결과를 통보받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성공률이 높지 않기에 거절의 말들을 마주하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면 아쉬운 마음도 들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은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런 것에 무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단지 빨리 털고 일어나 다시 창작이나 새로운 기획에 몰입하게 되는 속도가 빨라질 뿐.
예술 활동은 거절의 연속이다. 앞서 말한 방식의 거절도 흔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거절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책을 내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위한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출판사로부터의 거절을 견뎌내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렇게 책이 탄생해도 그 책이 대중들로부터 거절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야구선수가 3할만 쳐도 준수한 선수라고 했듯이, 한 출판사 관계자는 내게 ‘작가는 2할만 쳐도 훌륭한 작가다.’라고 귀띔을 해 준 적이 있다. 나머지 8할은 숱한 거절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가수들의 음반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오디션에 붙는 배우들보다 떨어지는 배우들이 훨씬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극장에 걸린 영화 중 박스오피스의 정상을 차지하는 작품들이 그렇지 못한 작품들보다 적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예술인들은 이러한 거절에 맞서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잘 된 사람들도 없지는 않으나, 거절을 당하더라도 다시 굳세게 일어서서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며 결국 살아남아 걸작을 만들어내는 이들도 존재한다. 지금은 대중가요계의 정점에 올라 있는 BTS와 아이유 같은 가수들에게도 당시에는 대중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만 초창기 작품들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첫 작품도, 박찬욱 감독의 첫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술인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마스터피스를 남기는 것도 성공이겠지만 대부분의 예술가에게는 생존 그 자체가 현실적인 꿈이다. 오래 생존한다면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 생존이라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그것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자질 중에는 남다른 예술적 재능도 있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도 있고 영민한 비즈니스 능력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거절을 견뎌내는 능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예술인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 앞에는 무수히 많은 거절과 거절들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에 걸려 고꾸라지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라고. 중요한 것은 거절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거절을 뒤로하고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