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내 존재가 잘못 놓인 바둑돌 같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기능하는 와중 나 홀로 삐걱대는 것 같을 때 특히 그렇다. 이런 기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왠지 모르게 따분하고 유명 평론가가 극찬한 작품에서 어떠한 감흥도 느껴지지 않을 때.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내겐 너무 커다란 이벤트처럼 다가오거나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을 건너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지구라는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처럼 여겨지면, 현실을 추동하는 모종의 질서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하루는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지만 어쩐지 불안은 떠나질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과 별 탈 없이 하루를 끝마친 것에 감사하려 노력하다가도 문득 어떤 의심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거, 조금 이상하지 않나?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에 질문을 던지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분은 찰나에 그치는 것이며 당장 몇 시간 뒤의 현실이 등을 떠미는 중이니까.
그런데 만약 눈앞의 현실을 거부하고 일상의 걸음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원활한 도로에서 급정거한 자동차처럼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흰 토끼를 따라간 앨리스처럼 미지의 세상과 조우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트 여왕이나 모자 장수를 만나 나 자신보다 훨씬 더 이상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결과를 낳듯, 외부 세계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처럼 낯설고 불쾌한 기분은 그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마크 피셔는 본인의 저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문화적 사례를 토대로 설명한다. 특히 H. P.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것’을 설명하기에 탁월한 작가다. ‘기이한 것’이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이 공존”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을 포함한다. 어떤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떠올려보자. 이를테면 바다 위를 부유하는 거대한 야자수나 공중을 떠다니는 낙타 같은. 가능해선 안 되는 것이 가능한 존재도 이에 해당한다.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기이한 것’은 단지 환상적인 영역이 아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을 보자. 그것들은 워낙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소를 재결합한 것에 불과하기에 어떤 기이한 감각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기이한 것’이 되려면 완전히 낯설면서도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중세 시대의 기사가 되는 것보다 게으른 상사의 정수리에 해바라기가 피어나는 것이 훨씬 더 ‘기이한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 주변의 세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로 “무한하고 무시무시한 미지의 것”을 보려고 하면 오히려 따분해질 우려가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소설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매혹적이다. 소설의 주된 배경인 뉴잉글랜드는 완전히 불가능한 외부 세계가 아니며 친숙한 현장이다. 거기에 난입한 기이한 존재는 허구의 것이나 현실 안으로 들어와 더욱 새로워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불쾌한 것을 향해 끌리는 충동, 이례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즐거움, 일상적인 현실 속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렇듯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나란히 놓았을 때, 우리는 기이한 감각과 동시에 낯선 끌림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나와 세계가 불화할수록 빚어지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책상 위 반듯하게 펼쳐진 책보다 모래사장에 파묻힌 텍스트가 더욱 궁금하지 않은가. 왜 거기에 놓였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깊이 탐구하고 싶어지는 충동. 재미있는 사건은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뒤틀리고 엉뚱한 생각이 튀어 오를 때야말로 삶이 가장 강렬해지는 순간이 된다. 낯선 기분과의 조우가 항상 유쾌할 순 없지만, 그것이 가진 특이성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