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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감미롭지만은 않은 이유

등록일 2024-04-23 19:18 게재일 2024-04-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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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커피 브런치.

커피콩 가는 소리가 들리면 함께 사는 강아지는 바빠진다. 손님이 온다는 걸 눈치 빠른 강아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재빨리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목을 길게 빼고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좋은 향이 날아가기 전에 손님이 빨리 왔으면 싶다. 나는 언젠가부터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은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 지구별에 보내는 내 작은 성의다.

커피만큼 사람을 휘어잡는 것이 또 있을까. 주변에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산다는 이들이 꽤 있다. 헤어날 수 없는 커피의 마력에 빠진 이들이다. 악마의 유혹에 이끌린 사람들로 인해 거리엔 카페가 넘쳐난다. 자고 나면 생겨나는 건 카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밥보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의 역할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밥을 먹고 나면 당연히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범국민적 공감대가 카페의 부흥에 가장 큰 디딤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떻든 커피는 감미로운 향과 맛으로 팍팍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무한다.

내가 커피와 가까워진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커피나무나 커피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때였다.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짬 모르게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담배 냄새가 짙게 밴 다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맛도 모르는 커피를 줄기차게 마셔댔다.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때로는 선배들이 하는 대로 다방 탁자에 놓인 소금을 집어넣어 보기도 했다. 소금 커피는 달달한 커피보단 못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먼 듯했다.

서른이 가까워오자 블랙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쓴맛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으므로 의도적으로 마셨다. 산다는 일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때였다. 그러다가 차츰 매혹적인 커피의 향에 눈뜨게 되었다. 쓴맛에서 느껴지는 커피 본연의 맛을 음미할 줄 알게 되면서 저절로 철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독약처럼 쓰다는 그것이 마음 맞는 친구 하나를 얻은 것처럼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런 커피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줄곧 이어졌다.

하나 요즘 들어 커피로 인한 고민이 생겼다. 마시면 마실수록 죄를 짓는 기분이 따라다닌다. 지구의 허파 구실을 하는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는 건 커피가 원인이기도 한 까닭이다. 전 세계 커피 인구가 늘어나면서 돈이 되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열대우림은 마구잡이로 파괴되었다. 그 속에 깃들어 살던 수 만종의 동식물들도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던 열대우림이 지금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곳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구가열화에 열풍기를 튼 격이다. 곰곰이 따지고 들면 그렇게 된 원인 중엔 오랜 세월 커피를 즐기는 나도 들어있는 것이다.

커피의 탄소발자국은 소고기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서 21g, 커피콩 1kg에서 15.3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커피 원두가 전 세계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 물 발자국 역시 제품이 생산되어 쓰이고 버려지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사용되는지 나타내는 환경 관련 지표를 말한다.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커피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수확하고 커피콩을 볶아서 전 세계로 유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130ℓ의 물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은 지난해 1인당 405잔을 마셨다는 통계가 있다. 전 세계 평균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

내 폰에는 지난해 생일에 날아든 스타벅스 커피 쿠폰이 몇 장 있다. 소읍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어 도시에 갈 때 써야지 했는데 매번 바빠서 아직 쓰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눠주는 사은품이 탐이 나거나 혹은 주변에 선물을 하느라 미리 한 묶음의 커피 쿠폰을 구입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소비자가 언제 마실지 모를 커피값을 미리 지불해 놓을 정도니 업자 측에선 커피 원두를 확보하느라 바쁘겠다. 그들이 지구 환경까지 관심 가질 여력이 있을까. 인터넷 쇼핑몰에 필요한 물건을 주문했더니 사용 후기를 올리면 100% 당첨된다는 커피 쿠폰 안내 쪽지를 보내왔다. 그야말로 우리는 커피를 빼놓으면 어딘가 허전한 시대를 살고 있다.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우리와 친숙한 커피는 우리 뇌를 혹사 시키는 역할을 한다. 커피에 든 카페인은 피곤한 상태에서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착각을 일으킨다. 뇌로 하여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곤할 땐 쉬어야 하지만 커피의 힘을 빌려 업무를 보는 이들이 주변에 흔하다. 커피는 피로회복제가 아니며 제대로 된 휴식만이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걸 기억하자.

지구별의 신음 소리가 곳곳에서 커져가고 있다. 최근 남미의 기록적인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 이상고온은 뭇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내가 사는 산골에는 이상 기온으로 인해 사과나무의 꽃눈이 잎눈으로 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꽃이 오지 않으면 열매 역시 기대할 수 없는 건 뻔한 이치다. 사과 농가의 수심이 깊어만 간다. 지금부터라도 지구별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해야 할 때다. 우선 모임 자리에서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대신 몸에 좋은 우리 차로 바꿔 보자.

◇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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