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이 된 이후 통일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첫 번째는 김일성이 사망한 때였다. 반도의 북쪽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절대존엄으로 군림하던 ‘위대한 어버이수령’이 죽었으니 엄청난 충격과 혼란과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머지않아 통일의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김정일 세습체제가 들어서서 전과 별로 다를 게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또 한 번 통일에 대한 기대로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후계자를 키울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터라 정치 경험이 없는 이십대 후반의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겠나 하는 예측이었다.
더구나 3대에 걸쳐 세습을 한다는 것도 마땅한 명분이 아닐 터라서 권력의 분화와 다툼이 일어나고 체제의 붕괴를 가져와서 통일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그런 기대마저 이복형을 죽이고 고모부를 처형하는 등의 잔인함을 보이며 일축해 버렸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가 안고 있는 불안 요소가 다 가신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절제한 생활로 인한 고도비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한동안 중병설에 사망설까지 나돌았다. 만약 김정은이 건강 문제로 쓰러지면 이번에는 선대와는 다른 양상이 전개될 거라는 전망이다. 백두혈통이라는 여동생이 있고 십대의 어린 딸이 있지만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을 터이니 마침내 김일성 일가의 세습체제가 종식을 고하지 않을까.
그와 동시에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불만과 원성이 분출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첨단기기의 보급으로 더 이상은 외부의 정보를 차단할 수 없게 되어 젊은 층에서부터 세습체제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리는데 지도자란 놈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호의호식하고 나라의 살림을 거들내면서 미사일이나 쏘아대는 짓을 두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천오백만 북한 주민들을 빈곤과 압제에서 구해내는 것이 더 시급한 통일의 과제이다. 얼마 전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같은 민족의 남측’이 아니라 ‘적대적인 다른 국가’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하고,‘점령·평정’해 ‘편입’할 대상이라고 선언을 했다.
‘그동안 같은 민족이라고 봐줬는데 이젠 무자비하게 도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그렇게 선언한다고 남과 북으로 갈라진 혈족의 연이 끊어지는 건 아니다.
통일을 위한 우선의 전제조건은 김정은 세습체제의 종식이다. 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김정은에게 타격을 주고 인민들이 더 이상 세습독재에 굴종하지 않고 분연히 들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남한부터 뜻과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