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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마음과 책을 읽는 마음

등록일 2024-01-16 18:37 게재일 2024-01-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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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가서 무언가 여기와는 다른 것을 경험하는 것을 여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여행하는 마음과 책을 읽는 마음은 꽤 상당히 닮아있다. 여행이 적절한 기간을 두고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이동하면서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만나거나 하는 것이 여행하는 마음이라면, 책의 첫 장을 펼쳐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언어들을 통해 지금 여기 없는 것을 상상하도록 하는 것은 책을 읽는 마음이다. 결국 책의 마지막 장을 닫고 책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삶의 경험들은 본디 하나의 단일한 직선을 그리면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이라는 삶은 우리의 본래의 현실적 삶과는 조금 달라 조금 더 순서를 가지고 흘러간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과정과 훨씬 더 유사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예전부터 짧은 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늘 여행 중에 읽을 책을 챙기곤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여행에서의 책 읽기가 성공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특히 느긋한 휴양의 여행이 아니라, 무언가 보아야 할 것이 많은 여행이라면, 여행에서의 경험과 책을 읽는 경험은 서로 나란히 어긋나 서로의 진행을 방해하곤 한다.

보통, 여행 중이라면 가벼운 소설 같은 것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소설책이야말로 여행 중에는 가장 위험한 피해야 할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다루고 있어서, 여행의 장소 감각을 확장시켜줄 수 있는 소설이라면 모를까. 여행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이동하면서 흘러가는 이야기적인 경험을 해야 하는 상황에, 또 다른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무리다. 자칫하면 여행하는 곳의 장소적 경험과 소설 속에서 경험하는 가상의 장소적 경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가급적 선이 굵은 확실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역사소설 같은 것이 아니라 배경음악처럼 울릴 수 있는 에세이나 시집을 고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은 여행의 좋은 준비물이다. 어떤 여행지에서라도 스마트폰으로 어떤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고, 전자책에 담긴 몇만 권의 책을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적절한 것 이상의 정보는 여행에서는 방해만 된다. 나에게는 낯선 장소들을 잇는 경험을 통해, 나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하기에는 종이책 만한 것이 없다. 언제나 약간의 아쉬움이, 또 약간의 불편함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한다. 여행 중 무언가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나, 대기해야만 하는 시간에 잠깐씩 꺼내 읽는 여행하는 누군가의 생각이 담긴 산문을 꺼내 읽으면, 그것은 하나의 점에서 하나의 점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나의 귓전에 울리는 배경음악이 된다. 여행하는 장소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경험과 그 몇 줄의 글은 공진하면서 좀 더 특별한 경험이 된다.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과정이 된다.

이번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행에서 볼 것,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함께 가져갈 책 한두 권 정도를 함께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은 그것에 대해 상상하고 고민하는 순간이 반 이상의 즐거움이니, 여행의 계획에 읽어야 할 책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다면 분명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들을 싸들고 가는 것도 좋을 테고, 여행의 장소와 어울리는 책을 골라 가지고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 여행은 경험이고, 책을 읽는 것도 경험이다.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는 마음이란 확실히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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