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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낱말이 주는 청량감 하나의 문장이 주는 따뜻함

등록일 2023-12-25 16:55 게재일 2023-12-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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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언어가 주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한 권의 시를 낭독해보거나, 필사해보는 경험이 가장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내고 요약하는 방식의 독서에 익숙해져 있어서 언어가 주는 청각적 울림이나, 시각적 새김에 대해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다. 하나의 시를 낭독을 해보거나 필사를 해보면, 그동안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감각 기관을 쓰는 것처럼 새삼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어떤 시집이라도 좋겠지만, 이 겨울에는 이문재 시인의 시집 ‘혼자의 넓이’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은 창비에서 출판된 해당 시집의 표지이다.

가끔은 스치듯 지나가는 단어가 마음속에 들어와, 나가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책에서 툭 떨어진 한 낱말이 일으킨 감정의 파문이 오랫동안 계속된다. 누군가 쓴 글의 일부였던 그 단어는 그것이 본래 들어 있던 맥락으로부터 빠져나와 불의의 순간에 그것을 읽는 내 맥락 속으로 뛰어든다.

가끔은 어떤 문장이 유독 머리에 맴돌아 그 짧은 문장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작 몇 개의 단어를 엮었을 뿐인 그 문장은 머릿속에 그림처럼 새겨져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 엮어두었을 그 문장은 나를 그 속으로 끌여들여서 그 속에서 헤매도록 만든다.

책을 읽을 때나,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 또는 누군가의 SNS에 올라온 피드를 읽을 때, 우리는 그 문자가 울림이나 새겨진 이미지를 읽고, 그 문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다. 이 당연한 과정은 어른이 되어 문해력이 높아지게 되면 망각되어 버린다.

어린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고 나서, 그 뒤에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조금 더 읽는 연습을 하게 된다면, 눈으로만 보고 소리를 상상하지 않아도 의미는 저절로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단어를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부터, 그 소리의 울림을 상상하면서 읽는 것으로, 나아가 문자의 시각적 새김만을 눈으로 보고서 읽는 것으로의 변화는 음성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로 표기하는 한국어 글쓰기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 자체에는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안경에 묻은 티끌은 내가 그것에 신경을 쓸 때는 보이지만, 내가 그 안경의 렌즈 너머로 보이는 대상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글을 읽을 때 그 문자들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의미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글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못한다. 소리를 내는 것이나, 소리를 내지 않고 시각적 새김만으로 읽는 것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떤 단어를 소리 내어 낭독해보거나, 어떤 단어가 새겨져 있는 방식에 주목해보면, 어색한 느낌을 준다.

가끔은 그래도 스치듯 울리는 단어들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시집이나 에세이집 속의 단어가, 누군가 손으로 쓴 삐뚤빼뚤한 편지 속 단어가, SNS에 누군가 남겨둔 단어가, 이유를 알 수 없게 갑자기 마음속에 들어와 귓전에 생생한 울림을 남긴다. 눈 아래 멍울과도 같은 잔영을 남긴다. 스토리가 있는 소설이나, 지식과 논리가 담겨 있는 인문 교양서와 달리, 시집이나 에세이집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공감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글을 계속 읽어오고 문해력이 늘어나면서, 그렇게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읽어버리고 있던 ‘읽기’라는 과정을 새삼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

사랑, 풀잎, 바람, 풍경…. 문득 마음속에 들어온 단어를 혀 위에 두고 굴리면, 왠지 새로운 감각으로 그 단어가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단어가 새겨져 있는 방식에 신경을 쓰면서 읽다 보면, 대체 어떻게 이런 새김으로 이런 단어가 되었을까 하는 낯선 느낌과 함께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조차 새삼스러워진다. 내 귀와 눈에 남아 있는 그 단어는 이리저리 부딪히며 청량감을 준다. 또한, 어떤 문장을 되뇌이다 보면, 그것이 연결되어있는 방식의 다정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너무나 바쁜 우리에게 그런 낯선 언어 감각의 훈련조차 사치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세상에 그런 단어, 문장 하나쯤 있다는 것은 어딘지 든든한 일이지 않은가. /송민호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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