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울진 후포리 신석기 유물 품은 팽나무 노거수
포항에서 울진으로 동해 해안선을 따라가 보면 올망졸망한 아름다운 크고 작은 항구가 즐비하다. 바다는 맑고 푸르며 해안 모래밭은 파도에 씻겨 햇살에 반짝인다. 해안을 따라 바다에 닿아있는 나지막한 산자락 모양이 예쁜 주름치마 입은 여인의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천혜의 아름다운 섬 울릉도를 가장 짧은 시간에 오가는 뱃길이 여기 후포항에 있다. 작지만, 아름다움으로 치면 후포항은 세계 3대 미항이라 불리는 나폴리, 시드니, 리우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영덕과 울진 경계 사이에 있는 후포항 등기산 공원은 신석기 유물을 품은 팽나무 노거수가 자생하고 있다. 자연과 문화, 역사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마을 동산처럼 오르기 쉬워 많은 사람이 찾는다. 볼거리와 먹을거리 못지않게 생각거리가 있는 곳, 울진군 후포항에 있는 등기산 공원의 신석기 유물을 품은 팽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BC 1만년 ~ BC 2천년 사이에 살았던
조상의 유적과 함께 자리잡은 노거수
여러 가지가 뭉치고 꼬이고 뻗은 모습
보는 이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어
넓은 바다를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
아름다운 후포항·자연경관을 한눈에
먼저 등기산 정상에 있는 원통 모형의 신석기 유적관에 들어섰다. 유적관에는 이곳 등기산에서 발굴된 BC 10,000년에서 BC 2,000년 사이 살았던 우리 조상의 무덤 모형을 전시해 놓았다.
계단식 구덩이에 집단 매장 무덤으로 20세 전후로 보이는 남녀 유골이 40인 이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유골의 남녀 성비가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100여 점이 넘는 장대형 석부들이 유골 위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농경 생활 이전의 수렵 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의 무덤으로 여타 발굴된 무덤과는 달랐다.
불현듯 인신 공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인 이상의 유골 주인이 20대 전후의 젊은 남녀로 성비가 비슷하다는 것도 그렇고 전망 좋은 언덕 위 구덩이에 묻혔다는 사실도 그렇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지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고 하지에는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신에게 올리는 제사는 제물을 바쳤다. 이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이 최고의 제물로 여겼다고 한다.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것이 너무 끔찍한 일이라 머리를 도리질하면서 부정해 보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인신 공양은 바다와 하늘에 대한 최고의 예우가 아닐까 싶다. 사실 하늘에 지내는 제사의 제물보다 정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 간절함의 소원을 빌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 이상의 정성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신석기 유적관을 나와 등기산 공원 산책길을 걸었다. 팽나무 노거수 아래에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막힘없이 망망대해를 180도까지 시야를 넓혀서 볼 수 있다. 수평선은 희끄무레한 물안개 띠로 직선이 아닌 둥그렇게 그어져 있다. 이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끝도 없는 무한히 넓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지구를 상상해 본다.
배를 육지로 인도하는 작은 항구의 등대가 있는 이곳은 바다를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바다는 물론 아름다운 후포항과 주변의 자연경관을 오롯이 한눈에 넣을 수 있다.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는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연상케 한다.
어찌 보면 바다와 하늘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았다. 여자와 남자,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음양의 느낌으로 와닿았다. 먼바다 수평선 구름 띠에 숨어 바다와 하늘이 밀회를 즐기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너머는 볼 수 없으나 상상하는 것으로 즐겁다.
팽나무 노거수에 눈길이 옮겨갔다. 위아래를 톺아보면서 그의 묘한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나무는 곧은 한줄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통인데 눈앞의 팽나무는 여러 가지가 뭉치고 꼬이고 비비대면서 묘한 모습이다. 위로 또는 옆으로 뻗어나간 가지의 모습이 어쩜 그렇게 특이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한다.
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모습은 낚시꾼에게는 대어이고, 약초를 캐는 사람에게는 대물처럼 나에게는 대박이다. 자연의 걸작품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 것은 누구의 허락도 제지도 없다. 순간의 멋진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세월이 해풍과 합작한 팽나무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톺아보니 기쁨과 즐거움 배가된다.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언덕 위 팽나무는 과히 대장부 기개답다. 앞뒤 위아래 탁 트인 언덕 위라 무엇 하나 막아주는 방패막이도 없다. 그런데도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닷바람에 맞서 늠름하게 살아가는 그 인내와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내와 용기의 배짱을 좀 일찍 배웠다면 나 또한 살아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가까이 다가가 살며시 두 팔 벌려 안아 본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온다. 눈을 감고 그 기운을 받는다. 지난 세월 힘들다고 포기하고 주저한 적이 얼마나 많았든가. 용기를 잃지 않고 참고 인내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잘 다듬어진 공원 산책길에는 각 항구의 등대, 교회 모형, 전망대, 조형물, 스카이워크 등 다양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을 먹으면서 바닷바람에 춤추는 팽나무 노거수에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가까이하고 싶은 감정의 샘물이 솟는다.
신석기 유물을 품은 팽나무 노거수는 묘한 모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볼 수 있고 세계 3대 미향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후포항을 내려다볼 수 있는 등기산 공원을 ‘후포항 팽나무숲 공원’으로 부르고 싶다.
팽나무에겐 최적의 환경 갖춘 등기산 공원
팽나무는 해안단구 및 하안단구의 돌출 지형에서 통기성과 통수성이 우수한 토양 환경에서 잘 자란다. 뿌리가 발달 되어 강한 바람에도 견딘다. 그런 토양 환경이라면 등기산 공원이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언제나 불어오고 있다. 하늘에는 햇살이 막힘없이 푸른 잎에 쉽게 닿을 수 있다. 동해안, 남해안 지역은 팽나무의 서식처이다. 팽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방풍림, 정자목으로 안성맞춤의 나무이다.
신석기 유적관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등기산을 지키는 자생 팽나무 노거수 품격을 높여주면 어떨까? 성주 성 밖 왕버들숲처럼 등기산을 ‘후포항 팽나무숲 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