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이슈 포항 소나무 재선충병 갈수록 확산<br/><2> 산사태·산불 등 후폭풍 우려
“대동배리는 들·도로와 이어진 산의 경사가 심해 산사태가 일어날 경우 그 아래 집들은 모조리 파묻혀 끝장날 겁니다.”
포항 호미곳면 김동주(69) 대동배리노인회장은 대동배1리 마을회관 뒷산 중턱의 재선충병에 걸려 벌겋게 변해버린 소나무 군락지를 바라보며 걱정스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12일 오후 포항 남부지역 동해면과 호미곶면 마을 입구에는 재선충병 방제사업으로 잘라낸 소나무들이 20∼30그루씩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20∼30 그루씩 군데군데 벌목
고사목 방치땐 산불 우려 ‘사면초가’
산 끝자락과 마을 거리 불과 수m
전문가들 “나무가 아닌 숲 지켜야
군락지 보호 대대적인 방제” 주장
“숲 전체 가꾸는 장기 플랜 마련도”
구룡포와 호미곶 해안 도로 중간 중간에도 ‘남구 해안권 소나무재선충병 긴급방제사업 시행’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방제사업으로 한 차선을 막은 곳도 있었다.
도로 주변에도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3∼4m 길이로 잘라, 곳곳에 쌓아 놓고 있었다.
김 회장은 “우리 동네 민가 대부분이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다”면서 “재선충병 소나무를 모두 베어 버린 지역은 특히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면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재선충병 방제사업을 마친 대동1리 뒷산은 중간이 텅 비어 멀건 흙만 보이면서 둥근 형태로 보였다.
이광수(61) 대동배1리 이장은 “2년 전에도 산사태가 났던 곳이라 주민들은 두려워 한다”면서 “산에 고사목을 다 베고 나면 소나무가 몇 그루 남지않을 텐데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대동배2리의 상황도 비슷했다.
재선충병으로 소나무들이 누렇게 변한 산의 비탈 아래 대부분 민가들이 밀집해 있었다.
산의 끝자락과 마을간의 거리는 불과 수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김승복(67) 대동배2리 이장은 “작은 불씨라도 튕기면 고사한 소나무가 불쏘시개가 돼 산불이 삽시간에 번질 것”이라며 “고사목을 제거하지 않으면 대형 산불이, 제거하면 산사태가 우려되는 사면초가”라고 말했다.
올해 호미곶면행정복지센터 재선충병 관련 민원은 30건이 넘는다.
◇포항시 소나무재선충병
소나무재선충은 크기 1mm 내외의 실 같은 선충으로서, 매개충(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의 몸 안에 서식하다 새순을 갉아 먹을 때 상처부위를 통해 나무에 침입한다.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는 지난해 전국 시군구 135개에서 38만본이 발생했으나 올해는 시군구 143개에서 107만본 발생, 약 2.8배 가량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온난화 현상이 심화돼 재선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한 것’을 급증 원인으로 꼽고 있다.
포항은 올해 전국에서 재선충 피해가 가장 큰 지역으로, 시 전역이 ‘소나무류 반출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포항시는 ‘지난 2020년 태풍 ‘마이삭’으로 지역의 소나무 도복현상이 심한데다 바다 인접 남부지역에 염해 피해까지 겹치면서 솔수염하늘소의 재선충병 매개가 활발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포항시의 피해 발생은 30만본으로 방제 작업은 20만본에 한해 시행 중이며, 현재 감염본은 5만본으로 추정된다.
◇방제 방법
산림청에 따르면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확인 후 방제는 △개별 감염목을 벌채하는 단목벌채, △감염목과 감염우려목을 동시에 벌채하되 일정 수준의 소나무를 잔존시키는 강도간벌, △감염목과 반경 20m 내 모든 소나무류를 벌채하는 소구역모두베기 방법이 있다.
또 △최대 0.3㏊까지 소규모 군락지 소나무류를 벌채하는 소군락 모두베기 △계획된 벌채구역 안의 모든 소나무류를 제거하는 모두베기 등이 있다.
벌채산물 처리는 △원목과 가지를 1m 내외로 잘라 1∼2㎡ 크기로 층적하고 훈증약제 사용 후 피복제로 밀봉하는 훈증 △1.5㎝ 이하로 파쇄, △소각 등의 방법이 있다.
또 △산지경사가 완만한 상승사면에서 산물의 양보다 더 크게 판 다음 50㎝ 가량 되메우는 매몰 △1m 내외로 잘라 그물망의 용량에 맞게 피복처리한 그물망 등의 방법도 있다.
이중 포항시는 현재 벌채목 파쇄 90% 가량, 훈증처리를 10% 가량하고 있다.
문제는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 벌채 후 많은 토사가 유실돼 산사태 위험이 높다는 점에 있다.
나무 뿌리는 토양을 단단하게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산에 나무들이 사라지면 집중 호우 시 흙의 밀착력이 떨어져 산사태 발생은 너무도 뻔한 이야기다.
또 고사된 소나무는 수분이 없기 때문에 산불 확산속도가 생나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
여기에다 본래 취약한 산림자원을 보강하기 위해 지난 1970년대 사방사업으로 조성한 소나무 군락지가 사라지면,‘포항지역의 공기 정화력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경북대 산림과학조경학부 오승환 임학전공 교수는 “나무라는 토양 보호층이 없어지면 산사태 증가는 당연한 일”이라며 “경사가 급하고 지반이 약한 포항 지역은 그 피해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다른 피해도 우려
산림청 관계자는 “포항·영덕·경주지역의 재선충이 울진의 금강송 군락지까지 파괴할까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산림 전문가들은 “국가차원에서 산림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호수와 문화재 등은 반드시 보호해야 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나무는 과감히 버리는’선별적인 일본식 방제법 도입에 대한 여론이 많다. 즉 ‘나무가 아니라 숲을 지키자’는 것.
오승환 교수는 “재선충병은 전국적 현상”이라며 “문화재 등 소나무 군락지 보호를 위해 대대적인 방제작업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대 이도형 수목생리및산림생태학연구실 교수는 “소나무가 죽을 경우 다른 수종이 자라는 등 자원 복원의 길도 생기는 법”이라며 “기후 변화 대처와 숲 전체를 건강하게 가꾸는 장기적인 플랜 마련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