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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학은 없다

등록일 2023-09-11 18:35 게재일 2023-09-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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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동해는 천혜의 어장이며 수산업은 포항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다. 따라서 포항 지역사회는 바다 건너편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해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24일 오전‘일본 후쿠시마오염수방류반대포항시민행동’은 죽도시장 개풍약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는 일본 정부, 그리고 반대와 견제는커녕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우리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방류를 앞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정화 시설(ALPS)을 거친 원전 오염수는 방류해도 안전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며, 일본 정부 또한 이를 오염수 방류의 ‘과학적’ 근거로 삼고 있다. 다소 황당하게도 우리 정부가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들여 이 ‘과학적’ 논거를 홍보하는 광고를 제작ㆍ방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 결과 상식과 안전의 문제여야 하는 것이 정쟁의 소재가 되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은 반증 가능하기 때문에 비로소 과학성을 확보한다고 보았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자 지식 체계이지만, 결코 그 자체로 완벽한 진리는 아니다. ‘ALPS로 걸러진 원전 오염수는 방류해도 안전하다’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주장 또한 지속적으로 반증되고 확인되어야 하는 가설이자 이론에 불과한 셈이다. 방류된 오염수가 중장기적으로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해양생물들의 먹이사슬에는 얼마나, 어떻게 축적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이번 오염수 방류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는 일찍이 산업 폐수의 무분별한 방류로 인해 이타이이타이병이나 미나마타병 같은 공해병을 겪은 바 있다. 미나마타병은 수은 중독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다.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위치한 신일본질소비료 공장에서 1950년대부터 중금속인 수은이 포함된 공장 폐수가 바다에 무단으로 방류되었고, 그것이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되어 어패류를 섭취한 사람들이 신체 마비, 정신지체 등의 심각한 증상을 겪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83년, 울산 온산공단 인근 주민들이 겪어 왔던 전신 통증과 마비 증상의 원인이 공단에서 바다로 흘러나온 중금속 때문임을 밝힌 ‘온산병’이 대표적인 공해병 사례로 알려져 있다. 쉽고 저렴하게 산업 폐수를 처리하려던 시도가 수년~수십 년 뒤 무서운 질병으로 돌아온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과학은 결코 100%를 이야기하지 않으며, 과거에는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건 실험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과학의 이름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아가 저지할 수 있도록 과학계와 시민사회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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