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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도마, 도마뱀

등록일 2023-09-10 16:53 게재일 2023-09-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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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을 가로지르는데 뱀 조심 뱀 조심

뱀 조심 팻말이 눈에 쏙 들어와서

도마뱀 도마 위에 뱀, 그런 생각했어요.

 

투명 플라스틱 컵 들고 들어온 사서선생님

여기 이것 봐요 문 틈으로 숨어들어

잽싸게 잡아 왔어요, 참 귀엽지 않나요?

 

작은 도마뱀 한 마리 몸 구부리고 엎드려

컵 바닥에서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어요.

가녀린 갈색 꼬리가 길어서 애처로워요.

 

빨리 내보내 주세요, 풀밭으로 어서요.

양쪽으로 볼록거리며 할닥거리는 심장

도마뱀 객주문학관 도마도마 뱀 뱀 뱀

 

― 이정환, ‘객주문학관 도마뱀’ 전문 (가히 가을호, 2023)

도마뱀이란 캐릭터는 공룡을 닮은 신비롭고 귀여운 외모 덕에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이다. 우리가 이 행성에 살기 전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종의 것이었다면 그것은 거대한 공룡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공룡들의 이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룡의 이름은 우리가 화석을 통해 알게 된 정보로 인간이 지었다.

말 그대로 이름을 만들어 낸 수 천 년의 역사에 인간이 가진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도마뱀이 파충류지만, 모든 파충류가 도마뱀은 아니다. 공룡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다이너소어(Dinosaur)도 그리스어로 ‘무섭다(δεινό)’는 뜻의 데이노와 ‘도마뱀(σαυρος)’을 뜻하는 사브로스에서 유래되었다면 우리말 도마뱀은 어떤 조어법으로 탄생했는지 궁금해진다.

여기 이정환 시인(1954~)이 작명한 도마뱀을 어린이들의 눈으로 탐색해 보자. 화자가 말하는 공간 객주문학관은 비교적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나는 청송에 있다. 이 일대는 선캄브리아시대 산악지형과 중생대 퇴적암과 공룡발자국지형 등 우리가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 시인의 “눈에 쏙 들어 온” 것은 뱀 조심 팻말이다. 아이들을 기쁘게 할 기대감에 사서 선생님은 “잽싸게 잡아” 온 도마뱀을 투명 컵에 담아 온다. 관찰하던 아이들은 웬일인지 빨리 내보내 달라고 재촉한다. 왜 그랬을까? 물릴까 봐 무서워서일까? 아이들은 투명 컵을 통해 들여다본 도마뱀의 모습에 마음이 급했다.

이희정 시인
이희정 시인

“몸 구부리고 엎드려” “컵 바닥에서 / 할딱할딱 / 숨을 몰아 쉬”고 있는 모습에서 도마뱀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평생을 초등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들과 보낸 시인은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선한 동심을 잘 읽고 있다. 시조가 가진 언어의 율동성을 다정다감한 대화체의 화법으로 “잽싸게” “할딱할딱” “볼록거리며” 등의 소리와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오래전 작은 아이의 도마뱀 일화가 떠오른다. 파충류에 흥미를 보이던 아이는 도마뱀 세 마리를 집에서 키웠다. 도마뱀의 집을 꾸며 주고 매일 들여다보며 먹이를 주곤 했는데 어느 날 한 마리가 죽어버렸다. 아이는 슬픔에 빠져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았는데 무심결에 웃음을 보인 엄마에게 식탁을 두드리며 분노했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떻게 도마가 죽었는데 웃을 수 있냐”고 항변했다. 아이의 슬픈 감정을 온전히 이해 하지 못했지만, 생명을 돌보는 갸륵한 심성에 감탄했다. 이후 아이는 남은 두 마리를 숲으로 풀어주었고, 더 이상 도마뱀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도마뱀이 가장 행복한 곳은 숲이란 것을 이해하고 갖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놓을 줄도 알았다.

찰나의 모든 순간은 예술이 된다. 그림이든 시든 무엇으로든 표현할 수 있다. 긴 여름 전시회장에서 본 카라바조의 그림 ‘도마뱀에 물린 소년’ 또한 그랬다. 얼굴표정으로 혹은 손가락으로 순간의 감정 서사를 그리듯. 이정환 시인이 운율로 감았다 풀어내는 동시조, 도마뱀 또한 재치 있게 작명한 한 폭의 기특한 풍경이다.

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다, 객주 문학관 풀숲에선 오늘도 “도마도마, 뱀 뱀 뱀”

이희정의 월요일은 詩처럼 기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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