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오십네 번째는 정사(丁巳)다. 천간(天干)의 정화(丁火)와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같은 화(火)기운으로, 빛과 열이 혼합되어 화려하고 찬란하다. 동물로는 붉은 뱀이다.
정사일주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형상이지만, 해 질 녘의 모닥불이며 뜨거운 용광로와 같다. 활동적인 불기운이 아니라, 정제된 불기운이다. 만사를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처리하여 처세에 능하기 때문에 큰일을 도모하고 성취하는 재능이 있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활동이 정열적이며 개성이 뚜렷하나 끈기가 약하다. 하지만 꺼질 줄 모르는 열정만은 남다르다.
현실적 감각이 뛰어나 금전 감각이 밝은 편이다. 판단력도 좋아 종종 주변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싫증도 빨리 내고 뒷심이 부족한 편이다. 초심과 달리 종종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인내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 현명하겠다.
한편 예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신의를 지키고 존중해주면서도 자기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는 스타일이다.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낙천적이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성격은 불같지만 쉽게 누그러지는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강한 상대를 보면 도전하고자 하는 승부욕도 가지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위나라 임금인 문후가 사냥터를 관리하는 관원에게 사냥하러 갈 날짜를 정해서 미리 알려주었다. 사냥하기로 한 날, 위문후는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마침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위문후는 사냥하기로 한 날임을 기억하고 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위의 신하들이 “오늘 술도 기분 좋게 마셨고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어딜 가시려고 그렇게 차비를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위문후는 “사냥터 관리인에게 오늘 내가 사냥 간다고 알려 놓았다오. 오늘 비록 술을 마셨고 비가 오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그는 끝내 사냥터 관리인에게 가서 직접 이번 사냥은 쉰다고 말해 주었다.‘위문후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약속에는 신분의 고하가 없는 법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편안함에 매몰된 사람은 쉽게 약속을 파기하는 경향이 있다.
정사일주 남자는 경제력이 충분해도 지나친 욕심과 고집으로 배우자가 힘들어 할 수 있다. 경제권을 아내에게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여자는 성격이 화끈하며 치장과 변신에 능하고 독설도 서슴지 않기에 언행에 주의해야 한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어야 만족하기에 고독하게 혼자 사는 경우가 있다. 남녀 모두 결혼은 만혼이 좋다. 부부다툼으로 인하여 이별수가 있으니,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져줄 수 있어야 화목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정사일주는 보름달 아래 붉은 뱀의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느낌이 강하고, 혼자 다니기를 좋아해 어딘가 비밀이 많고 속마음을 잘 비추는 법이 없다. 하지만 밝고 놀기 좋아한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버티는 악착같은 면도 있다. 쇠약하거나 시들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멸의 일주다. 뒷담화로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포용력이 넘치고 친화적이라 인기가 좋은 편이다. 분위기 메이커는 아니지만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또한 화려한 색상의 의상이나 눈부시고 사치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 성공과 권력에 대한 욕구가 남다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억을 아주 잘하며, 상대가 베푼 작은 선행도 감사하고 잊지 않는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이 있으면 이를 앙갚음하기 위해 원한을 가지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스콧 피츠제럴드 (1896∼1940)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급격한 성장을 이룬 미국 경제와 물질 만능주의가 난무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군 입대와 가난 때문에 이별해야 했던 애인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당시 금주법을 악용하여 불법인 밀주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게 된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강 맞은편에 거대한 주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밤이 되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바라보며 불이 꺼질 때까지 바라본다. 그녀와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연다. 언젠가 그녀가 방문하리라는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데이지는 부유한 톰과 결혼을 했고, 딸아이까지 있었다.
개츠비는 우연히 자기 집 근처에 사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 닉을 만난다. 닉은 개츠비가 오래전 연인이었던 데이지를 아직도 못 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닉을 통해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만난다. 개츠비는 인생을 걸고 데이지에게 모든 걸 바치려 하지만, 데이지는 사랑에 응답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랑한 사람은 톰이 아니라 자신이라며 언쟁을 벌이게 된다. 기분이 언짢은 데이지가 자리를 뜨자 뒤쫓아 간 개츠비는 그녀가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는 도중에 톰의 정부 머틀을 차로 치어 죽이게 된다. 톰은 머틀의 남편 윌슨에게 개츠비의 짓이라고 알려준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 데이지는 오지 않았다. 닉과 게이츠 아버지 등 두 세 사람만이 참석했다. 그 후 닉은 고향에 돌아간다.
1920년대 미국사회의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치부를 드러내며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타락과 이상을 쫓다가 신분 장벽으로 좌절된 한 젊은이의 삶을 담고 있다. 교활한 사람, 비겁한 사람은 간혹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들은 심오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너무도 단순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00년이 지난 우리 사회도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로 출세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코인, 주식,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갈망하고 있다. 신분상승으로 인해 상류기득권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그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몰락의 길인 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