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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진 시대

등록일 2023-09-04 18:16 게재일 2023-09-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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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출판된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표지.

소설을 원작으로 그것을 영상화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인공에 어떤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란 본디 독자의 꿈속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독자가 꿈꾸는 소설 속 나만의 주인공을 현실 세계의 누가 따를 수 있을 것인가. 꿈과 경쟁할 수 있는 현실이란 본디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먼저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마치 그것 먼저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의 기억의 선후 관계를 바꾸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소설 원작이 있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도 있고,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려고만 하면 어떻게 해도 그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만 떠오르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본디 소설은 시각적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문자의 추상성과 그 연결을 통해 그것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각인이므로, 그것은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시각화된 이미지가 현대인의 마음을 전유하는 시대라고 해도, 꿈속에 있던 그 이상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당연하다.

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려본다면, 어떤가? 아마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1900~1949)의 원작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2년 뒤에 나온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을 연기했던 ‘비비안 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많은 소설 속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둘러싼 꿈과 현실 속 구체적 인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인식 너머로 사라져 버렸지만,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스칼렛 오하라만큼은 오히려 사람들의 꿈 앞으로 나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

오랜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꺼내 읽으며, 비비안 리가 스칼렛 오하라로서,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이 레트 버틀러로 미국 남북전쟁의 한복판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며 어떻게 그들이 독자들의 마음속 꿈에까지 걸어들어올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비비안 리(Vivian Leigh).
비비안 리(Vivian Leigh).

물론, 비비안 리가 없었어도,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스칼렛 오하라는 그 자체로도 모든 사람에게 각인될 만큼 멋진 주인공이다. 거친 남부의 타라 농장에서 살아가며 숙녀가 되는 가장 보수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대한 정열이 숨겨져 있다. 이 스칼렛 오하라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성장해온 여성 작가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미국으로 옮겨와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실현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남북전쟁이라는 전통과 명분, 그리고 자본이 얽히는 시대를 배경으로 좌충우돌하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의 사랑은 계속해서 어긋나면서 계속 이어진다. 스칼렛은 자신이 사랑했던 애쉴리 윌크스에 대한 질투이자, 가문끼리의 거래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한 번 결혼했으나 결혼 직후 남편이 죽어 바로 혼자가 되고, 전쟁으로 타라 농장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 폐허만 남은 농장을 떠안는다. 농장주로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와중에, 스칼렛은 돈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결혼한다. 스칼렛은 한 번은 가문 때문에, 한 번은 돈 때문에 결혼하고, 스칼렛과 레트의 사랑은 그렇게 부유해 가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사랑보다 시대를 견뎌내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어쩌면 스칼렛 오하라가 단지 로맨틱한 플롯의 일반적 주인공이었다면, 아마도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그 인물이 그토록 우리에게 각인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람과도 같이 시대는 사라지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니 말이다.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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